御言葉によって生きる(ルカ4:1-13)-2019.3.10.四旬節第1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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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言葉によって生きる(ルカ4:1-13)-2019.3.10.四旬節第1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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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3-12 00:46照会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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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머니들이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들은 잔소리가 많습니다.
すべての母親が同じだと思いますが、母親たちは小言が多いです。
먼저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인생의 좋은 길을 제시해 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합니다.
先に人生を生きたので、子供たちに人生の良い道を提示してくれるからだと思います。
제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私の母も同じです。
지금도 잔소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今も小言が多い人です。
지난 번 어머니가 교회에 방문했을 때도 저는 여러 설교를 들었습니다.
先々週、母がこの教会に来たときも、私は、いろいろな小言を聞かされました。
이러한 잔소리는 사랑에서부터 비롯됩니다.
でも、このような小言は、愛から始まったものです。
사랑이 없으면 잔소리도 하지 않겠지요.
愛がなければ小言もしないでしょう。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머니는 여러 면에서 설교를 합니다.
子どもが無事に過ごせるように、母親はいろいろなことで説教をするのです。

저는 성서의 말씀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は聖書の言葉も、これと同じ脈絡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처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쓰여졌다라는 것입니다.
子供に対する母親の心のように、人間に対する神様の愛が書かれたということです。
성서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聖書は、私たちがこの世で神の子として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教えています。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신자로서 중요한 것입니다.
御言葉によって生きることは、信者として大事なものです。
그래서 성서는 우리의 생활의 여러 면에서 무엇이 바른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だから聖書は、私たちの生活のいろいろな面で、何が正しいのかを教えてくれています。
이것이 때로는 잔소리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これが、時には、小言に感じられることもあると思います。
해라, 하지 마라와 같은 말씀이 우리의 생활을 간섭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しなさい、してはならないなどの言葉が、私たちの生活を干渉するように感じられることもあると思います。
그러나 성서의 모든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しかし、聖書のすべての言葉には、神様の愛が入っています。
우리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私たちへの関心があります。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말씀들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だから、聖書の言葉に従って生きようと努力することは、神様の愛を受け入れることと同じです。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에 대해서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は、イエス様が受けられた誘惑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
이 유혹들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유혹입니다.
この誘惑は、私たちの日常生活でも、十分起こりうる誘惑です。
그렇다고 해서 이 유혹이 이겨내기 쉽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だからといって、この誘惑には勝ちやすいというのではありません。
아담으로부터 수 많은 사람들은 이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アダムからの多くの人々は、この誘惑に勝てませんでした。
아마도 저도 여러분들도 이 유혹에 넘어간 적도 있을 것입니다.
おそらく私も皆さんも、この誘惑に負けたこともあるでしょう。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들을 이기셨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誘惑に勝たれました。
그리고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そして、この誘惑に勝つために、イエス様は聖書の言葉をお使いになりました。

오늘의 복음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본문 앞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今日の福音書を理解するために、まず、本文の前の箇所をみましょう。
본문 앞에는 예수님의 세례와 족보가 등장합니다.
本文の前には、イエス様の洗礼と系図が書かれています。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공적인 생애의 시작을 가르쳐 줍니다.
イエス様の洗礼は、イエス様の公的な生涯の始めを教えてくれます。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구세주로서의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洗礼を受けてから、救い主としての公的な生涯を始めました。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족보는 왜 쓰여졌을까요?
では、イエス様の系図は、なぜ書かれたのでしょうか。
여러 의미가 있지만, 오늘의 복음서와 연결해서 보면 인간의 시초인 아담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いろいろな意味がありますが、今日の福音書と連結してみると、人間の始まりであるアダムと関係があると思います。
로마서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아담으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5章と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15章では、アダムによって死が入ってきたと書かれています。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創世記3章でのアダムは、蛇の誘惑に負けました。
여기서 뱀은 전통적으로 사탄이라고 해석합니다.
ここでのヘビは、伝統的にサタンと解釈されています。
그 일로 인해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そのことによって、アダムはエデンの園から追い出され、永遠の命を失ってしまうことになります。
예수님의 세례는 구세주로서의 공적인 생애의 시작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イエス様の洗礼は、救い主としての公的な生涯の始まりだと申し上げました。
구세주의 일은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救い主の働きは、すべての人に永遠の命を与えることです。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 사건 뒤에 쓰여진 족보는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の洗礼の後に書かれた系図は、イエス様が、アダムの子孫だということを教えてくれます。
아담의 후손인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공적으로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アダムの子孫であるイエス様は、すべての人の救いのために、公的に誘惑を受けるのです。
아담이 실패한 일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アダムが失敗したことを回復させるためです。
사탄은 예수님의 공적인 구원을 방해할 것입니다.
サタンは、イエス様の公的な救いの活動を妨げるのです。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유혹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そして、最終的には、イエス様を誘惑して、イエス様に従っている信者たちも、永遠の命を得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するでしょう。
이것이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유혹을 받는 이유입니다.
これが今日の福音書でのイエス様がサタンに誘惑を受けた理由です。

오늘의 복음서 본문에서의 유혹은 총 세 가지입니다.
今日の福音書での誘惑は、全部で3つです。
그리고 이 유혹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そして、この誘惑は、私たちの生活と密接な関係があります。
예수님의 공식적인 유혹이 우리의 생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참 의미 깊습니다.
イエス様の公的な誘惑が私たちの生活と関係があるというのは、意味深いことです。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이러한 유혹이 올 수 있으며 우리 역시도 이러한 유혹에 이길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にも、いくらでもこのような誘惑が来る可能性があり、私たちも、このような誘惑に勝つことができるという希望を与えるからです。
예수님에게 주어진 첫 번째 유혹은 3절에 쓰여져 있습니다.
イエス様に与えられた最初の誘惑は、3節に書かれています。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悪魔はイエスに言った。『神の子なら、この石にパンになるように命じたらどうだ』」。

예수님께서 이 유혹을 받았을 때에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한 상태였습니다.
イエス様がこの誘惑を受けられたときは、40日間、荒野で断食した後という状態でした。
여기서 40이라는 숫자와 광야라는 장소는 출애굽 후 광야에서 유랑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을 떠올리게 합니다.
ここで、40という数字と荒野という場所は、出エジプトの後、荒野で流浪生活をしたイスラエルを思い出させます。
게다가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 대한 답변을 모두 신명기서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さらに、イエス様はサタンの誘惑についての答えを、すべて申命記書の言葉を使って言われました。
신명기서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유랑 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申命記書の背景は、イスラエルが荒野で流浪の生活をしていた時です。
이스라엘 역사상 40년간의 유랑 생활은 이스라엘이 가장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イスラエルの歴史の中で、40年間の流浪生活は、イスラエルが最も大変だった時期でしょう。
즉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다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つまり、イエス様が40日間、荒野で断食したということは、人間として最悪の状態になっていたと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
예수님은 그러한 상태에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状態で誘惑を受けられました。
그리고 그 유혹의 첫 번째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そして、その誘惑の最初は、人に必ず必要な食べ物に関することでした。

식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食欲は人間の最も基本的な欲求です。
그리고 배고픔을 참아내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そして空腹を耐えることほど、大変なことはないと思います。
과거 이스라엘이 유랑 생활을 할 때도 배고픈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過去イスラエルが流浪生活をした時も、空腹を耐える時がよくありました。
그 때마다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불평을 했으며, 심지어는 이집트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そのたびに、イスラエルはモーセに文句を言って、さらには、エジプトに帰りたいと言う人もいました。
다시 노예 생활을 선택할 정도로 배고픔이라는 것은 참아내기 힘든 것입니다.
再び、奴隷の生活を選択するほど、空腹というものは、我慢ができないことです。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굶주리셨습니다.
イエス様は40日間、荒野で何も食べずに、空腹を覚えられました。
그리고 먹을 것에 대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そして悪魔に、食べるものについての誘惑を受けられました。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4절)”였습니다.
この時、イエス様の答えは「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ものではない(4節)」でした。
이 말씀은 “떡이 필요 없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この言葉は、「パンが要らない」というのではありません。
떡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パンを与えてくださる方は、どなたなのか理解する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荒野でのイスラエルの民は、マナを食べていました。
만나라는 것은 하늘의 음식입니다.
マナというものは、天の食べ物です。
민수기 11장 9절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民数記11章9節にはこう書かれています。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夜、宿営に露が降りると、マナも降った。」
이스라엘 백성은 수고하지 않고 만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イスラエルの民は、働きもせず、マナを食べることができました。
그러나 규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しかし、ルールが一つありました。
만나를 모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マナを集めてはならなかったのです。
자신의 욕심을 위해 만나를 모으면 그 만나는 전부 벌레가 먹고 썩고 말았습니다.
自分の欲のためにマナを集めると、マナはみんな虫が付いて臭くなって、無駄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言葉が、これと同じです。
떡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パンは人に必要なものであり、すべてではありません。
우리에게 떡이 전부가 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가 없습니다.
私たちにとってパンがすべてになったら、私たちは自分の欲の心によって、神様の言葉に従って生きることができません。
하나님이 떡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神様がパンに隠れてしまうからです。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도 떡이 자신의 생활에서 전부가 되었을 때 모두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聖書の偉大な人物たちも、パンが自分の生活の中ですべてになってしまった時、みんな神様に従わなかったのです。
아담도,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アダムも、モーセも、ダビデも、ソロモンもそうでした。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私たちも同じでしょう。
그래서 떡은 중요한 것이지만 전부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だからパンは大事なものですが、すべてになってはいけないのです。

예수님에게 주어진 두 번째 유혹은 권력과 번영에 대한 것입니다.
イエス様に与えられた二番目の誘惑は、権力と繁栄についてのことでした。
사탄은 자신에게 절을 하면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サタンは自分を拝むなら、みんながイエス様のものになると言います。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イエス様は40日間、荒野にいました。
이 광야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この荒野とはいろいろ解釈す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광야는 비참했을 때였습니다.
イスラエルにとっての荒野は、悲惨な時期でした。
국가도 아니었고 힘도 없었습니다.
国でもなかったし、力もありませんでした。
언제든지 외세의 침략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고, 집이나 건물을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いつでも外部の侵略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環境であり、家や建物などを建てることもできませんでした。
오직 하나님만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ただ神様だけを信じ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
그래서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권력과 번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イスラエルが願ったのは、権力と繁栄だったと思います。
예수님도 40일 동안의 광야 생활을 통해 이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も40日間、荒野の生活を通して、このようなことを感じられたと思います。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곳이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誰も自分を守ってくれないところが、荒野だからです。
그래서 사탄은 광야에서 온 예수님에게 권력과 번영을 제시합니다.
だからサタンは、荒野から来たイエス様に権力と繁栄を受ける方法を提示します。
예수님은 이 유혹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誘惑にこう答えられます。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拝み、ただ主に仕えよ。」

이 말씀은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この言葉は、荒野での神様の恵みを覚えなさいと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
누구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40년간 광야에서 무사히 생존했습니다.
誰もイスラエルを守ってくれなかったのですが、イスラエルは40年間荒野で無事に生きることができました。
필요에 따라 물과 만나와 메추라기를 얻었고, 가나안 땅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必要によって水とマナとウズラを得られ、カナンの土地に無事に落ち着くことができました。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권력과 번영을 추구합니다.
人々は、自分の人生のために、権力と繁栄を求めています。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악한 것과 손을 잡기도 합니다.
そして時には、そのことをために、悪と手を握ることもあります。
하지만 권력과 번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しかし、権力と繁栄は永遠ではありません。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지도 않습니다.
私たちに真の平安を与えることでもありません。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만이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고, 악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입니다.
神様の恵みを覚えることだけが、私たちが永遠に生きることができる道であり、悪に勝つことができる方法です。

예수님께서 받으신 마지막 유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イエス様が受けられた最後の誘惑は、神様を試すことでした。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サタンは、イエス様を神殿の屋根の端に立たせ、「神の子なら、ここから飛び降りたらどうだ」と言います。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지키실 것입니다.
イエス様が神の子なら、神はご自分の独り子を守られるでしょう。
이 유혹은 참 그럴 듯 해 보입니다.
この誘惑は、本当にもっともらしくみえました。
그러나 이 유혹에는 정체성을 시험하는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しかし、この誘惑には、アイデンティティを試すことが入っていました。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을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イエス様にご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試してみよということです。
우리도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대해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私たちも、時には、私たちが神の子だということについて、疑いが起こる時があります。
특히 우리가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그런 느낌이 듭니다.
特に、私たちが大変な状況に置かれた時に、このような感じがします。
그리고 그러한 의심으로 인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そして、このような疑問によって、私たちの信仰が揺れることがあります。
사탄은 의심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흔듭니다.
サタンは疑いを通して私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揺らします。
“하나님의 자녀라면”이라는 말로 우리가 신앙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神の子なら」という言葉で、私たちが信仰を維持す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するでしょう。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しかし、私たちは神の子です。
우리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私たちの状況とは関係なく、私たちは神の子です。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의심하던 의심하지 않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私たちが神の子であることを疑ってもなくても、私たちは、神の子です。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神様がご自分の子だと言われたからです。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イエス様にも同じでした。
그래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試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공적인 유혹이었지만 이러한 유혹은 우리의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イエス様が受けられた誘惑は、公的な誘惑でしたが、このような誘惑は、私たちの生活でも、起こることがあります。
왜냐하면 우리는 말씀에 의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私たちは御言葉によって生きるクリスチャンだからです。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そして私たちは、このような誘惑に取り組んで戦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神様を愛しているからです。
이러한 싸움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것이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것입니다.
このような戦いを通して、私たちは成長することができ、私たちを通して、神の国がこの世に建てられるでしょう。
하나님께서 우리의 싸움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神様が私たちの戦いに共におられますように。
그리고 말씀에 의해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そして御言葉によって誘惑に勝つ私たちになりますように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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