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が覚まされた(ルカ18:31-43)-2019.3.17.四旬節第2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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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が覚まされた(ルカ18:31-43)-2019.3.17.四旬節第2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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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3-20 14:41照会2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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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에 눈이 멀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欲に目がくらむ」という言葉を聞いたことがあるでしょう。
욕심이 생기면 그 욕심으로 인해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欲があると、その欲によって正しい判断が妨げられるという言葉です。
지난 주 설교에서는 예수님이 유혹 받는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先週の説教では、イエス様が誘惑を受けておられる場面がありました。
예수님은 악마에게 유혹을 받았고, 그 유혹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심이었습니다.
イエス様は悪魔に誘惑を受けられ、その誘惑は、人間が持っている基本的な欲によるものでした。
악마는 식욕, 권력욕, 명예욕등을 이용해 예수님을 유혹했고, 예수님이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하려고 했습니다.
悪魔は食欲、権力欲、名誉欲などを利用してイエス様を誘惑し、イエス様が正しい判断を下す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しようとしました。
예수님의 유혹에 욕심이 사용될 정도로 욕심이라는 것은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の誘惑に欲が使われるほど、欲というものは、私たち人間にとって良くないものだと思います。
그러나 안타깝게도 욕심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しかし、残念ながら欲は、すべての人が持っているものです。
욕심을 사람의 본능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사람 안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欲は人の本能だと言えるほど、すべての人が持っているものです。
욕심을 제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이 욕심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기도 합니다.
欲を制御することはとても難しいことであり、この欲によって、私たちは、神様の言葉に従わないこともあります。

이 욕심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この欲をどのように解決すればよいでしょうか。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 욕심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どのようにすれば、イエス様のように、私たちは、この欲から来る誘惑に打ち勝つ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저는 우리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신앙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私は、私たちが誘惑に打ち勝つためには、信仰というものが必ず必要だと思います。
신앙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信仰は、単に何かを盲目的に信じ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기독교에서의 신앙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キリスト教での信仰は、キリストに従うことを意味します。
그래서 신앙은 우리가 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판단할 수 있게 해 주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게 해 줍니다.
だから信仰は、私たちが正しいことと間違っていることとを判断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
すべての状況の中で、神様の言葉に従う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
때로는 우리가 스스로의 욕심에 의해 눈이 가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時には私たちが自分の欲によって目がくらむことがあります。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正しい判断を下すことができない時もあります。
그러나 신앙은 우리를 욕심 가운데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しかし信仰は、私たちを欲の中に置かれないようにしてくれるのです。
우리를 이끌어 욕심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해 바른 길로 가게 할 것입니다.
私たちを導いて欲から離れ、私たちの目を開いて正しい道に行かせるのです。
그래서 루터는 “오직 신앙”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だからルターは「信仰のみ」と言いました。
신앙이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信仰が私たちを導いてくれるからです。

오늘의 복음서의 말씀도 이 신앙이 중심입니다.
今日の福音書の言葉も、この信仰が中心です。
오늘의 복음서는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の箇所は、二つに分かれています。
하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과 맹인의 이야기입니다.
一つは、イエス様と弟子たちの話であり、もう一つは、イエス様と盲人の話です。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ご自分の死と復活について予告なさいます。
본문 앞에는 “예수 세 번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다”라고 굵은 글씨로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の本文の前に「イエス、三度死と復活を予告する」と太字で書かれています。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イエス様は、ご自分の死と復活について、弟子たちに教えてくださいます。
이것은 과거 구약의 선지자로부터 예고 되어 있는 것이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これは、過去に、旧約の預言者から予告されていることであり、書かれていたのです。
31절의 말씀입니다.
31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니라.”
「イエスは、十二人を呼び寄せて言われた。『今、わたしたちはエルサレムへ上って行く。人の子について預言者が書いたことはみな実現する。』」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で起こることが、神様のご計画であることを言われます。
그리고 자신이 어떤 죽음을 당할 것이고, 부활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そして、ご自分がどのような死を受け、復活するかを教えてくださいます。
그러나 제자들의 반응은 이상합니다.
しかし、弟子たちの反応は不思議です。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イエス様の言葉が理解できないようです。
34절의 말씀입니다.
34節の御言葉です。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十二人はこれらのことが何も分からなかった。彼らにはこの言葉の意味が隠されていて、イエスの言われたことが理解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弟子たちが、イエス様の言葉が分からなかった理由は、何でしょうか。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의 의미가 감춰져 있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そして弟子たちには、この言葉の意味が隠されているという言葉は、何を意味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이것은 욕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これは欲と関係があります。
제자들에게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弟子たちには欲がありました。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는 것이었고, 독립 후에는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유대를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それは、イエス様を通して、ローマから独立をすることがであり、独立した後には、自分たちがイエス様と一緒にユダヤを治めることでした。
이러한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このような欲を持ってイエス様に従ったので、イエス様が三度も、ご自分の死について言われたのに、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욕심이 자신들의 눈을 가렸던 것입니다.
欲が弟子たちの目を覆ったのです。
욕심이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欲が神様のご意志を見ないようにしたのです。
그래서 복음서는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의 의미가 감춰져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だから福音書の著者は、弟子たちには、この言葉の意味が隠されていたと書いたのです。

욕심이 가지고 있는 힘은 큽니다.
欲が持っている力は大きいです。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욕심에 가리워질 수가 있습니다.
神様の言葉さえも、欲によって覆われることがあります。
많은 크리스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多くのクリスチャンが注意すべきことが、このことです。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하고 낙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私たちが神様に失望してつまずいている理由も、ここにあります。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욕심에 의해 스스로 실망하는 것입니다.
神様が私たちを失望させるのではなく、私たちが自分の欲によって失望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イエス様の弟子たちも同じでした。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씀대로 모욕당하고 죽음을 당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실망했습니다.
だから、イエス様がご自分の言葉どおりに、侮辱されて殺されたとき、弟子たち皆はがっかりしました。
그리고 자신들이 했던 일들로 돌아갔습니다.
そして、自分たちがしていた仕事に戻りました。
욕심에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갈 바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欲に目が眩んでいたので、みんな行き先きが分からなかったのです。
자신의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自分の欲を持って神様の言葉を受け入れてはならないのです。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信仰の中で、神様の言葉に従う時だけが、神様の言葉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제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弟子たちは、結局自分たちの欲のために、イエス様の言葉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그리고 복음서 저자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 놔두고 다른 곳을 주목하게 합니다.
そして福音書の著者は、言葉を理解していなかった弟子たちを置いておいて、他の場所を注目させます。
그 곳은 여리고라는 장소이고, 그 곳에는 한 맹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その場所はエリコという場所であり、そこにはある盲人が物乞いをしていました。
이 맹인은 군중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この盲人は、群衆が通って行くのを聞いて、何のことかと尋ねます。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라고 말해줍니다.
人々は「ナザレのイエスのお通りだ」と言ってくれます。
이 말을 들은 맹인은 그 자리에서 크게 외칩니다.
この言葉を聞いた盲人は、その場で大きく叫びます。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ダビデの子よ、わたしを憐れんでください。」
사람들이 꾸짖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人々が盲人を叱りましたが、盲人は意に介しませんでした。
그리고 이 외침은 예수님의 귀에 들렸고, 예수님은 맹인을 부르십니다.
そして、この叫び声は、イエス様の耳に聞こえ、イエス様は盲人を連れてくるように命じられました。
40~41절의 말씀입니다.
40〜41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イエスは立ち止まって、盲人をそばに連れて来るように命じられた。彼が近づくと、イエスはお尋ねになった。『何をしてほしいのか。』盲人は、『主よ、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たいのです』と言った。」

저는 여기서 맹인의 대답과 제자들의 모습이 함께 오버랩 되었습니다.
私はここでの盲人の答えと弟子たちの姿が、一緒にオーバーラップしました。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 그리고 보기를 원하는 맹인.
イエス様の言葉を理解していない弟子たち、そして目が見えるように願っている盲人。
복음서의 저자는 왜 이 말씀을 이어 놓았을까요?
福音書の著者は、なぜこの言葉をつないでいたのでしょうか。
독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보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닐까요?
読者が神様の言葉を正しく見ることを願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43절을 보겠습니다.
43節をみましょう。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神をほめたたえながら、イエスに従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
맹인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盲人は、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そして、神様をほめたたえながら、イエス様に従いました。
맹인이 눈을 떴다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盲人の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のは、単に物理的なことだけを言っているのではないと思います。
왜냐하면 눈을 뜬 맹인이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見えるようになった盲人が、イエス様に従ったからです。

이러한 장면은 예수님의 부활 이 후에서도 나타납니다.
このような場面は、イエス様の復活の後でも、現れます。
누가복음 24장 30~31절의 말씀입니다.
ルカによる福音書24章30〜31節の御言葉です。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一緒に食事の席に着いたとき、イエスはパンを取り、賛美の祈りを唱え、パンを裂いてお渡しになった。すると、二人の目が開け、イエスだと分かったが、その姿は見えなくなった。」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흩어졌습니다.
イエス様の言葉を理解できなかった弟子たちは、イエス様の死によって、散らばってしまいます。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몸소 찾아가서 만나주시고 자신의 부활을 알리셨습니다.
しかし、復活されたイエス様は、彼らを自ら訪ねて会ってくださり、ご自分の復活を知らせました。
그리고 그 때 제자들의 눈도 열렸습니다.
そして、その時、弟子たちの目も開けました。
자신의 욕심에 의해 이해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두 이해가 된 것입니다.
自分の欲によって、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イエス様の教えが、すべて理解されたのです。
그리고 눈을 뜬 맹인이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そして、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盲人がイエス様に従ったように、復活のイエス様に会った弟子たちも、イエス様に従いました。
오늘의 복음서의 저자는 이것을 독자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の著者は、このことを読者に教えたかったようです。
그래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맹인이 눈 뜬 사건을 이어 써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弟子たちが分からなかったことと盲人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ことをつないで書いておいたのだと思います。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우리가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私たちが欲を持っていれば、神様のご意志が分かりません。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신앙입니다.
神様のご意志が分かる唯一の方法は、信仰だけです。
신앙만이 우리가 바른 신도의 길을 걷게 할 것이고, 신앙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입니다.
信仰だけが、私たちが正しい道を歩ませ、信仰だけが私たちを救ってくれるでしょう。
그리고 신앙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실 것입니다.
そして、信仰の中で、神様は私たちの目を開いてくださいます。
욕심에 가리워져 있는 보석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欲によって覆われた宝を見えるようにしてくださるのです。
이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와 가르침이 있기를 바랍니다.
これを信じて従う私たちの上に、神様の教えがありますように。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すべてのことに、神様の知恵を求める皆さんになりますいように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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