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仰は判断するものではない(ルカ15:11-32)-2019.3.31. 四旬節第4主日 > 説教

본문 바로가기
説教

信仰は判断するものではない(ルカ15:11-32)-2019.3.31. 四旬節第4主日

페이지 정보

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3-31 23:49照会37회 댓글0건

본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ほとんどの人々には、自分が立てた基準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많은 것들을 판단합니다.
そして、その基準に基づいて多くのことを判断しています。
선하다, 나쁘다, 좋다, 싫다 등의 판단기준은 거의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의해 내려집니다.
善い、悪い、好き、嫌いなどの判断基準は、たいてい自分の考えや経験によって下されます。
하지만 그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しかし、その判断が必ず正しいわけではありません。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すべての人が各自の判断基準を持っているからです。
예를 들면 저는 운동을 좋아하고, 그 중에 탁구를 좋아합니다.
例えば、私は運動が好きで、その中で卓球が好きです。
하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탁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しかし、運動が好きな人の中にも、卓球が嫌いな人がいるでしょう。
만일 제가 탁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탁구를 싫어하니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고 합시다.
もし私が卓球が嫌いな人に、「あなたは卓球が嫌いだから、運動が嫌いな人だ」と言ったとしましょう。
그렇다면 제가 한 말이 바른 말일까요?
それでは、私が言ったことは正しいでしょうか。
당연히 바른 말이 아닐 것입니다.
当然に正しい言葉ではありません。
왜냐하면 탁구 외에도 많은 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卓球のほかに、多くの運動があるからです。
그리고 각자가 좋아하는 운동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そして、人によって、それぞれが好きな運動が、みな違うからです。

신앙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信仰というものも、これと同じだと思います。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私たちはみんな、イエス様を信じる信仰を持っています。
하지만 그 신앙의 형태는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しかし、その信仰の形は、みんなが同じではありません。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과 같지 않다고 좋지 않은 신앙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だから、外の人の信仰が自分の信仰と同じではないからといって、良い信仰ではないと判断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
신앙에는 좋고 나쁨이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信仰には良し悪しはありません。
どんな信仰でも、神様は信者の信仰を喜ばれます。
서로의 신앙을 용납하는 것.
お互いの信仰を受け入れること。
이 역시도 성숙한 신앙이 아닐까요.
このことが成熟した信仰ではないでしょうか。

오늘의 복음서는 우리가 많이 들어 본 말씀입니다.
今日の福音書は、私たちがよく耳にする話です。
탕자의 비유라는 말씀인데, 두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放蕩息子のたとえですが、二人の息子と父親の話です。
본문에서의 둘째 아들은 방탕한 사람입니다.
本文での次男は、放蕩者です。
아버지의 재산을 요구하고 받은 재산을 방탕하게 맘대로 써 버린 사람입니다.
父の財産を要求して、受けた財産を放蕩の限りを尽くして、無駄使いしてしまった人です。
이에 반해 큰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습니다.
これと違って、長男は父と離れることなく、仕えながら一緒にいます。
둘째 아들은 받은 재산을 다 쓰고 살기 위해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옵니다.
次男は受けた財産を全部使い切って、生きるために、父のもとに戻ります。
그가 돌아오기 위해 내세운 조건은 아들로서가 아니라 품꾼으로서 자신을 받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彼が戻ってくるために立てた条件は、息子ではなく、雇い人の一人として自分を受け入れてくださいということでした。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로서 그를 받아들입니다.
しかし、父は彼を息子として受け入れます。
그리고 둘째 아들을 위한 큰 연회를 베풉니다.
そして、次男のための大きな宴会を催します。
그런데 이것을 본 큰 아들은 화를 냅니다.
ところが、このことを見た長男は、腹を立てます。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そして家に入ろうとはしません。
이를 본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서 달랩니다.
これを見た父親が出て来てなだめます。
하지만 큰 아들은 둘째 아들에게 큰 연회를 베푼 아버지에게 불평을 합니다.
しかし、長男は次男のために、大きな宴会をもうけた父に文句をします。
29-30절의 말씀입니다.
29-30節の御言葉です。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兄は父親に言った。『このとおり、わたしは何年もお父さんに仕えています。言いつけに背いたことは一度もありません。それなのに、わたしが友達と宴会をするために、子山羊一匹すらくれなか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ところが、あなたのあの息子が、娼婦どもと一緖にあなたの身上を食いつぶして帰って来ると、肥えた子牛を屠っておやりになる。』」

언뜻 보면 큰 아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어 보입니다.
ちょっと見ると、長男の言葉は間違ったことではないように見えます。
큰 아들의 말대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방탕하게 써 버린 자입니다.
長男の言葉通りに、次男は父の財産を放蕩に使い切った者です。
그러한 둘째 아들을 위해 연회를 베푸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このような次男のために宴会をもうけたのは、当然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그러나 큰 아들의 말에는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しかし、長男の言葉には、足りない部分があります。
그것은 동생이 돌아왔다라는 것에 대한 기쁨과 동생에 대한 사랑입니다.
それは自分の弟が戻ってきたということについての喜びと愛です。
큰 아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長男は自分の基準によって判断をしました。
자신은 아버지를 섬겼고,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라는 판단.
自分は父に仕え、弟はそうではなかったという判断。
자신은 방탕하지 않았다라는 판단.
自分は放蕩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判断。
자신은 아버지의 재산을 맘대로 쓰지 않았다라는 판단.
自分は父の財産を勝手に使わなかったという判断。
이러한 판단들이 동생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このような判断が弟への愛情を失わせてしまうことになりました。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父は長男にこう言います。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32절).”
「お前のあの弟は死んでいたのに生き返った。いなくなっていたのに見つかったのだ。祝宴を開いて楽しみ喜ぶのは当たり前ではないか(32節)。」

아버지,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 더 바른 것인가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父、すなわち、神様が私たちに望まれているのは、何がより正しいのか判断す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자비와 사랑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憐れみと愛の中で信仰生活をすることを望んでおられると思います。
서로를 향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お互いに向かって、自分の基準を持って判断することほど、愚かなことはないでしょう。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
お互いを受け入れて、愛すること。
이것이 신앙이 아닐까요.
このことが信仰ではないでしょうか。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규율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教えに従うために戒めを守ることも大事です。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しかし、その根底には、愛が必要です。
사랑 안에서 가르침을 따르고 규율을 지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愛の中で教えに従って、戒めを守る皆さんになりますように。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神様の愛が私たちと共にありますように。
사람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이케가미 교회를 이끌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人の判断ではなく、神様の愛が池上教会を導い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教会情報

連絡先: 03-4285-6094(教会)
東京都大田区池上6-21-18
教会の牧師:李正雨(イゾンウ)
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教会の礼拝及びプログラムの時間

毎週日曜日、午前11時 主日礼拝
毎週土曜日、午前11時30分 聖書研究会
毎週土曜日、午前10時、12時 英語教室
毎週水曜日、韓国語教室(生徒募集中)

Copyright © ikegamichurc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