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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言葉によって打ち砕かれる(ルカ20:9-19)-2019.4.7.四旬節第5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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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4-10 23:10照会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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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다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쓰여지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打ち砕かれるという言葉は、いろいろ使われている言葉だと思います。
물건이 부숴질 때도 쓰는 말이지만, 사람의 이상이나 생각등이 부서질 때도 쓰여집니다.
品物などが砕ける時も使われている言葉ですが、人の理想や考え方などが砕けるときにも使われています。
오늘 설교 제목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내었습니다.
今日の説教題も、このような文脈から考え出しました。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人々は自分自身の考え方があります。
그리고 그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そして、その考え方はなかなか変わりません。
자신의 생각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그것이 위협받는다고 생각되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멀게 하기도 합니다.
自分の考えを維持したいと思って、それが脅かされるかもしれないと思われたら、相手との関係を避けさせることもあります。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相手が真実を言っていると分かっていても同じです。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외면하는 것입니다.
自分の考えを守るために目をそむけるのです。
의외로 종교인들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意外にも、宗教に関わる人たちもこのような考えを持っています。
평안을 전하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종교인들도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끝까지 꺾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平安を伝え、すべてのことを受け入れているように見える宗教を信じている人たちも、自分の間違っている考えや主張などを最後まで抑えない場合があります。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 깨지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부정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おそらく、自分の考え方が崩れると、自分が信じていることが否定されるのだと思っているようです。
기독교의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クリスチャンの教職者たちも同じですね。
그래서 교회 역시도 지금까지 많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겪어 왔습니다.
だから、教会もやはり、今まで多くの政治的、社会的な葛藤を経験してきました。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생각이 깨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しかし、その中で神様の言葉によって、考え方が打ち砕かれた人々がいました。
그들이 교회를 개혁했고 변화시켰고, 그들 때문에 교회는 지금까지 올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彼らが教会を改革したり、変化させたりして、彼らによって教会は、今まで来ることができたと思います。

오늘의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은 생각이 깨어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今日の福音書でのイエス様は、自分のために偏狭な考え方を持っている人々に対して、たとえを通して言われます。
그들은 유대인들, 특히 유대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彼らはユダヤ人のことで、特にユダヤの指導者たちを指します。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神様はご自分の民であるユダヤ人に、ご自分のご意志を知らせるために、預言者たちを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
그러나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しかし、彼らは預言者たちの言葉を聞いていませんでした。
자신의 욕심을 위해 예언자들의 말을 거부했습니다.
自分の欲のために、預言者たちの言葉を断りました。
그 일에 빗대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そのことにつけて、イエス様はご自分の言葉を聞くために集まった人々に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
10절의 말씀입니다.
10節の御言葉です。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収穫の時になったので、ぶどう園の収穫を納めさせるために、僕を農夫たちのところへ送った。ところが、農夫たちはこの僕を袋だたきにして、何も持たせないで追い返した。」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나오는 농부들은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のたとえの中での農夫たちは、目の前の利益だけを考えています。
이익만을 쫓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利益だけを追った理由は簡単です。
포도원 주인이 자신들과 멀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ぶどう園の主人は自分たちと離れていると思っていたからです。
그래서 포도원의 모든 소출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だからぶどう園の収穫を自分のものにしようとしました。
주인이 자신의 종을 보냈지만 그 종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主人が自分の僕を送りましたが、その僕の話を聞きません。
그 뿐 아니라 종을 때리고 거저 보냅니다.
それどころか、僕を袋だたきにして、何も持たせないで追い返します。
그리고 이 일은 반복이 됩니다.
そしてこのことは、繰り返されます。
주인이 보낸 두 번째 종도, 세 번째 종의 말도 듣지 않고 때려서 내 쫓습니다.
主人が送った二人目の僕も、三人目の僕の言葉も聞かないで袋だたきにして、ほうり出します。
그러자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기로 합니다.
すると主人は、最終的に自分の息子を送ることにします。
자신의 아들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自分の子なら、状況が変わ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たからです。
13절의 말씀입니다.
13節の御言葉です。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そこで、ぶどう園の主人は言った。『どうしようか。わたしの愛する息子を送ってみよう。この子ならたぶん敬ってくれるだろう。』」

하지만 결과는 더욱 참혹했습니다.
しかし、結果はもっと悲惨でした。
아들이 온 것을 본 농부들은 아예 포도원을 빼앗기 위한 계략을 세웁니다.
息子が来たのを見た農夫たちは、ぶどう園を奪うための計略を立てます。
14절의 말씀입니다.
14節の御言葉です。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農夫たちは息子を見て、互いに論じ合った。『これは跡取りだ。殺してしまおう。そうすれば、相続財産は我々のものになる。』」
그리고 농부들은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そして農夫たちは、息子をぶどう園の外にほうり出して殺してしまいました。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イエス様はこのたとえを終えて、人々にこう尋ねます。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15~16절)”
「さて、ぶどう園の主人は農夫たちをどうするだろうか。戻ってきて、この農夫たちを殺し、ぶどう園をほかの人たちに与えるにちがいない(15〜16節)。」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행동을 지적하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言葉を通して、当時のユダヤ指導者たちの行動を指摘なさいます。
그들은 포도원의 소출, 즉 성전의 헌금으로 자신의 배를 불렸고, 성전을 통해 돈을 더 모으기 위해 성전에서 장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彼らはぶどう園の収穫、すなわち、神殿の献金で自分の腹を肥やして、神殿を通してお金を集めるために、神殿で商売をするようにしました。
그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정치가와 손을 잡았습니다.
彼らが助けなければならない人々を見やることもせず、自分の権力のために政治家たちと手を握りました。
성전을 사유화 한 것입니다.
神殿を私有化したのです。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そのことが可能だった理由は、彼らが神様を尊重していないからだと思います。
포도원의 농부들처럼 주인을 자신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분, 성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ぶどう園の農夫のように、神様を自分たちと遠く離れている方、神殿については、何の影響力も与えないものとして思っていたことは、間違いないでしょう。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음에도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それで、彼らは神様の言葉を読んでいても、その言葉に耳を傾けなかったので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종을 보냅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ぶどう園の主人は、続けて自分の僕を送ります。
주인이 자신의 종을 보낸 것은 단지 포도원의 소출만을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主人が自分の僕を送ったのは、ただぶどう園の収穫だけを望んでいたためだけではないでしょう。
만일 그렇다면 첫 번째 종이 맞고 돌아왔을 때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포도원을 되찾았을 것입니다.
もしそうだったら、最初の僕が袋だたきにされて戻ったときに、自分が持っている力でぶどう園を取り戻したでしょう。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인은 세 번째 종까지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そのことが目的ではなかったので、主人は三番目の僕までに送ったと思います。
포도원의 농부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포도원을 위해 주인은 인내했던 것입니다.
ぶどう園の農夫たちのために、そして、自分のぶどう園のために、主人は忍耐したのです。
그리고 농부들이 세 번째 종의 말까지도 듣지 않자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そして、農夫たちが三人目の僕の言葉までも聞かないと、主人は自分の息子を送ります。
그러나 욕심과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던 농부들은 아들까지도 내 쫓아 죽입니다.
しかし、欲と自分の考えに捕らわれていた農夫たちは、息子までもほうり出して殺しました。
포도원, 즉 성전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ぶどう園、すなわち、神殿を占めるためです。

예수님은 이 말씀을 성전에서 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この言葉を神殿の中でなさいました。
성전에 모인 민중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16절의 말씀처럼 성전이 다른 사람의 손에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神殿に集まった民衆にこの話をなさって、16節の言葉のように、神殿は他の人たちに与えられると言われます。
다른 사람의 손에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가 있습니다.
他の人たちに与えられるという言葉の意味は、いろいろ解釈することができます。
성전이 로마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神殿がローマによって崩れるという意味として解釈することもでき、神殿ではなく、イエス様の弟子たちが中心になるという意味に解釈することもできます。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깨지지 않는 그들,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려는 그들에게는 더 이상 포도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大切なのは、自分の主張と考えが打ち砕かれなかった彼ら、神様のものを自分のものとする彼らには、もはや、ぶどう園は与えられないというのです。

우리 신자들의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私たち信者の生活の中で、神様を信じることは大きな意味を占めています。
믿는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또는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信じるということは、神様の言葉に従うこと、または、従おうと努力することでしょう。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유는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そして、私たちが神様の言葉に従っている理由は、その言葉が正しいと思っているからです。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だから、神様の言葉によって、自分の考えや主張などが打ち砕かれることを恐れてはなりません。
하나님의 것을 사유화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선교를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버려야 될 때도 있습니다.
神様のことを私有化しようとしてもならないし、宣教のために自分の考えや主張を捨てることもあります。
이러한 모든 일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미련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このようなすべてのことが、他の人の目から見ると、愚かなことのように見えるかもしれません。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유지되고 성장해 갈 것입니다.
しかし、このようなことを通して、神様の国は維持されて成長していくでしょう。

본문 1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本文17節で、イエス様はこう言われます。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家を建てる者の捨てた石、これが隅の親石となった。」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돌이 필요합니다.
家や建物を建てるときは、必ず石が必要ですね。
튼튼한 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을 때 안정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丈夫な石の上に柱を立てて家を建てるときは、安定した家を建てることができます。
돌이 튼튼하지 못하다면 기둥을 세울 수가 없겠지요.
石が丈夫でなければ、柱を立てることができないでしょう。
그래서 건축자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기둥을 세울 수 있는 돌과 그렇지 않은 돌을 구분합니다.
だから建築者たちは、自分の判断によって、柱を立てることができる石とそうでない石を区別します。
그리고 기둥을 세울 수 없는 돌은 한 곳에 모아두었다가 공사가 끝나면 내다 버립니다.
そして柱を立てることができない石は、一箇所に集めておき、工事が終わると、出して捨てます。
그런데 건축자들의 판단이 매번 옳은 것은 아닙니다.
ところが、建築者たちの判断が毎回正しいわけではないでしょう。
튼튼한 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돌이 있고, 약한 돌이라고 생각했지만 튼튼한 돌이 있습니다.
丈夫な石だと思いましたが、そうでない石があったり、弱い石だと思いましたが、丈夫な石があったりします。
그럴 때 건축자들은 자신이 버린 돌 중에서 튼튼한 돌을 찾아 교체하겠지요.
そのような時、建築者たちは、自分が捨てた石の中から丈夫な石を見つけて、引き換えるでしょう。

예수님 당시의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버린 돌처럼 생각했습니다.
イエス様の時の一部の人々は、イエス様の言葉を捨てた石のように思いました。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今も、そのように思っている人々は、いないわけではありません。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머릿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しかし、神様は、イエス様の言葉を頭石になるようにしてくださるでしょう。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신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이 머릿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復活を通して、イエス様の弟子たちを通して、私たちの信者を通して、イエス様の言葉が頭石になるようになさるのです。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치 버려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時には、イエス様の言葉がまるで捨てられているように見えるかもしれません。
모든 교회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すべての教会の状況が良いわけではないからです。
하지만 때가 이르면, 우리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된 예수님의 말씀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しかし時が来ると、私たちはすべての中心になっているイエス様の言葉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그 때 우리들은 웃을 것이고, 우리의 생각과 주장이 깨어지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할 것입니다.
その時、私たちは笑うことになって、私たちの考えと主張などが打ち砕かれたことに感謝するでしょう。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節でイエス様はこう言われます。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その石の上に落ちる者はだれでも打ち砕かれ、その石がだれかの上に落ちれば、その人は押しつぶされてしまう。」
저는 이 말씀이 예수님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등이 깨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はこの言葉が、イエス様によって、すべての人々の考えや主張などが打ち砕かれるのだという言葉だと思います。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저는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私は信仰生活ということは、簡単なことではないと思います。
오늘의 설교 안에서도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今日の説教の中でも、信者に要求される多くのことがありました。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한 것으로도 보일 수가 있습니다.
そして、このようなことが、他の人の目には、愚かなことでも見えるかもしれません。
하지만 이 일들은 절대로 가치가 없는 일들이 아닙니다.
しかし、このことは、絶対に価値がな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私たちは正しい道に歩んでいて、神様はこのような私たちを通して、ご自分の御業を示されるでしょう。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말씀에 의해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今も多くの人々は、御言葉によって、自分の主張や考えが砕かれています。
이 일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このことが、私たち自身と私たちの周りにも起きることがありますように。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神様の御言葉が私たちと共にありますように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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