巡礼の道(ルカ9:51-62)-2019. 7.14. 聖霊降臨後5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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巡礼の道(ルカ9:51-62)-2019. 7.14. 聖霊降臨後5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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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7-22 17:26照会2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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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인이 살고 있는 인생을 순례의 길에 비교하고는 합니다.
私たちは、信者の人生を巡礼の道にたとえることがあります。
순례라는 것은 보통 멀리 떨어져 있는 성지를 향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巡礼とは、普通、 遠方の聖地に赴くことを意味します。
그런데 왜 우리의 인생을 순례의 길에 비교하기 시작했을까요?
ところが、なぜ、私たちの人生を巡礼の道にたとえるのでしょうか。
아마도 과거에는 성지를 향해 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おそらく、過去には、聖地に向かっていくことが簡単ではなかったからだと思います。
지금처럼 교통이나 치안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성지를 방문하러 가는 도중 많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今のように、交通や治安などが良くなかった時代には、遠く離れた聖地を訪れる途中、多くの事故が起こりました。
강도를 만나기도 했고, 병에 걸리기도 했고, 다양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強盗に会うこともあり、病気にかかることもあり、様々な事故が起こりました。
그래도 당시의 신자들은 성지를 방문하기를 원했습니다.
でも、当時の信者たちは、聖地を訪問することを望みました。
그 곳에 가서 신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겠지요.
そこに行って、神の息吹を感じたかったからでしょう。
우리의 인생이 순례의 길에 비교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길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たちの人生が巡礼の道にたとえられていることは、私たちの信仰の道でも、多くのことが起こるからだと思います。
이제는 치안이나 의료등이 과거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인생에는 예상 외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今は、治安や医療などが過去より良くなりましたが、それでもまだ、私たちの生活の中には、予想外のことが起こります。
그리고 우리 신자들은 그 일들 안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며 살고 있기에 우리의 인생을 순례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そして、私たち信者は、そのことの中で、神様の教えに従って生きているので、私たちの人生を巡礼の道だと言っているのでしょう。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즉 순례를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では、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行かれる、すなわち、巡礼をなさるイエス様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기약이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기로 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天に上げられる時期が近づくと、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行かれることになさいました。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예루살렘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この世を救われる神様の計画が、エルサレムに準備されていたからです。
51절의 말씀입니다.
51節の言葉です。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イエスは、天に上げられる時期が近づくと、エルサレムに向かう決意を固められた。」
오늘의 복음서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라는 문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今日の福音書を理解するためには、「イエスは、天に上げられる時期近づくと」という文章を念頭にお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엄격해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そうでなければ、イエス様の言葉が厳しすぎて、受け入れにくいです。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 인간들의 구원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イエス様の昇天は、私たち人間の救いと関係があります。
예수님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 승천이 준비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私たちの救いのために、ご自分の死と復活、昇天が準備されている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巡礼に行かれる決意を固められました。
그런데 이 순례의 길을 잘 마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ところが、この巡礼の道をうまく終えるためには、条件が一つあります。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로 걷는 것만이 순례를 마칠 수 있는 길입니다.
神様が計画なさった道だけに行くことが、巡礼を終えることができる道です。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다른 것을 계획하면 안 됩니다.
他のことを考えたり、他のことを計画してはなりません。
오직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길만으로 걷는 것이 순례의 길을 잘 마칠 수 있는 조건입니다.
神様が備えられた道だけを歩くことが、巡礼の道をよく終えることができる条件です。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떠나시기로 결심하십니다.
このような状況で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巡礼に出ることになさいました。
그리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십니다.
そして、ご自分の使いの者を先に出されました。
사자들은 예수님의 순례를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使いの者は、イエス様の巡礼を準備しようとサマリアの村に入りました。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곳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そこでの人々に歓迎されませんでした。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を目指して進んでおられたからです。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サマリア人とユダヤ人の関係は良くありませんでした。
좋지 않았다기 보다는 서로 인정하지를 않았다라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良くなかったというよりも、お互いを認めなかったという表現がより正しいと思います。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サマリア人は、エルサレムの神殿を神様の神殿として認めませんでした。
반대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逆に、ユダヤ人たちは、サマリア人たちがエルサレムの神殿に来ることを歓迎していませんでした。
여기에는 당시의 이 두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져 있습니다.
ここには、当時の両国の政治的、社会的、倫理的な問題などの複雑な問題が絡んでいます。
여하튼 이 두 나라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とにかく、この二つの国は、お互いを認めませんでした。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자신들만을 위한 성전을 따로 세웠습니다.
そして、サマリア人たちは、ゲリジム山に、自分たちのための神殿を別に建てました。
같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성전이 두 개였던 것입니다.
同じ神様を信じていましたが、神殿は二つであったのです。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을 보내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떠날 준비를 하십니다.
ところが、イエス様は使いの者を出させて、サマリアからエルサレムを目指して巡礼の準備をさせました。
이 소식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고, 당연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このニュースは、サマリア人の耳に入り、当然にサマリア人たちは、ゲリジム山ではなく、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いくイエス様を歓迎しなかったのです。
자신들의 성전을 향해 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自分たちの神殿に向かって行くのではなかったからでしょう。

예수님의 순례의 길은 처음부터 반대를 받았습니다.
イエス様の巡礼の道は、最初から反対を受けました。
환영 받지 못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歓迎されず、サマリア人たちは、イエス様から離れてしました。
신앙의 길, 순례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信仰の道、巡礼の道というものは、このようなことが起こることを覚悟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だと思います。
사실은 모두에게 환영 받아야 하는 길입니다.
本当は、みんなに歓迎されることが当然の道です。
그러나 이 길은 반대 받을 수도 있고, 이 길을 간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しかし、この道は、反対されることもあり、この道を行くという理由で、周りの人がみなさんから離れることもあります。
教会だより라는 교단 잡지에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 친한 친구에게 절교를 선언 받았다고 쓴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教会だよりという教団の雑誌に、ある牧師先生が教会に出席することになって、親友に絶交されたと書いてあったことを読んだことがあります。
자세한 이유는 쓰여져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신앙을 선택하고 신앙의 길을 걷는다고 해서 좋은 일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詳しい理由は書かれていなかったので分かりませんが、信仰を選択して、信仰の道を歩くとしても、良いことだけが起こ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때로는 절교를 당할 수도 있고, 반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時には、絶交されることがあり、反対されることもあります。
예수님도 순례의 길 처음부터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イエス様も、巡礼の道に最初から歓迎されませんでした。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イエス様の決意はゆらぎませんでした。
환영 받지 못한 채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셨습니다.
歓迎されないまま、イエス様は巡礼の道に行かれました。
왜냐하면 그 길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준비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その道だけが、神様が教えてくださって準備なさった道だからです。
저도 여러분들도 그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私も皆さんも、その道を歩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願います。

예수님이 환영 받지 못하자 제자들은 화가 났습니다.
イエス様が歓迎されないことが分かると、弟子たちは怒りました。
저도 아마 제 선생이 환영 받지 못한다면 화가 날 것 같습니다.
私も、おそらく、私の先生が歓迎されなかったら怒ると思います。
그래서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だから、弟子たちの中でヤコブとヨハネは、イエス様にこう言います。
54절의 말씀입니다.
54節の言葉です。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弟子のヤコブとヨハネはそれを見て、『主よ、お望みなら、天から火を降らせて、彼らを焼き滅ぼしましょうか』と言った。」
야고보와 요한은 화가 났습니다.
ヤコブとヨハネは怒りました。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イエス様を歓迎していないサマリア人たちに怒りました。
그래서 저들을 멸하기를 원했습니다.
それで、彼らを滅ぼすことを願いました。

그런데 여러분.
ところが皆さん。
이 두 제자가 이렇게 말한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この二人の弟子がこのように言った理由を一度考えてみてください。
예수님이 환영 받지 못해서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환영 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라서 화가 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イエス様が歓迎されなかったので怒っているのか、それとも、歓迎していない人々がサマリア人なので、怒っているか、一度考えてみてください。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은 일입니다.
歓迎されないというのは、気分が良くないことです。
그렇다고 해서 멸한다는 것도 말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だからといって、滅ぼすということはとんでもないことでしょう。
그런데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하자고 합니다.
ところが、弟子たちはサマリア人を滅ぼしましょうかと言っています。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その理由は何でしょうか。
예수님이 환영 받지 못한 곳이 사마리아만은 아닌데 말입니다.
イエス様が歓迎されなかったところが、サマリアだけではないのに…
저는 그 이유가 환영 받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민족 간의 혐오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私は、その理由が歓迎されないことだけではなく、民族間の憎しみにあったと思います。
그래서 예수께서는 돌아보시며 꾸짖으신 것입니다.
だから、イエス様は振り向いて戒められたのでしょう。

우리의 순례의 길에 있어서 버려야 하는 생각이 이러한 생각입니다.
私たちの巡礼の道において、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考え方がこのような考え方だと思います。
우리와 생각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또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해서 편협 된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私たちと考え方が合わないからといって、また、同じ民族ではないからといって、偏狭な考え方を持ってはいけません。
미워하는 마음은 순례자의 자세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憎む心は巡礼者の姿とふさわしくないのです。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神様のご意志に従う道に必要なものは、愛です。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イエス様の教えどおりに「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すること」です。
상대방이 나의 길을 반대한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워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相手が私の道に反対するからといって、私のことを愛していないからといって、憎むなら、それは、神様のご意志に従うこと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주기도문에 쓰여져 있는 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主の祈りに書かれているとおり、イエス様が私たちの罪を許したように、私たちも、隣人の罪を許すべきです。
반대를 당하면 56절의 말씀처럼 다른 마을로 가면 됩니다.
反対されたら、56節の言葉のように、別の村に行けばいいです。
그것이 순례의 길에 어울리는 것이고 순례의 길을 값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それが、巡礼の道にふさわしいことであり、巡礼の道を貴重な道にすることでしょう。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イエス様と弟子たちは、別の村に行かれました。
그리고 그 길에 몇 사람과 만나셨습니다.
そして、その道に何人かの人とお会いになりました。
처음 만난 사람은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말합니다.
初めて出会った人は、イエス様に「あなたがおいでになる所なら、どこへでも従って参ります」と言います。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すると、イエス様はこう言われます。
58절입니다.
58節です。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狐には穴があり、空の鳥には巣がある。だが、人の子には枕する所もな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に従うと言っている人に、イエス様は枕する所もないと言われました。

이 말씀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この言葉について黙想してみました。
그리고 제가 얻은 답은 순례자의 머리 둘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そして、私が得た答えは、巡礼者の枕するところは、この世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둘 곳을 이 세상에서 찾습니다.
多くの人々は、自分の枕するところをこの世で捜しています。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안식을 얻으려고 합니다.
そして、この世から安息を得ようとしています。
그러나 순례자에게 있어서 참 안식을 얻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しかし、巡礼者にとって真の安息を得るところは、この世ではありません。
여우도 새도 자신의 굴과 둥지에서 안식을 얻지만, 우리의 안식처는 여기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キツネも鳥も、自分の穴と巣から安息を得ていますが、私たちの安息のところはここではありませんので、私たちは、この世で安息を得ることができません。
우리에게는 순례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私たちには巡礼の目的地があります。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이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イエス様に従うと言っている人は、これを認知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이 세상에서 안식할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안식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この世での安息する所を捜すのではなく、神様の言葉の中で安息する所を捜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예수께서는 이것을 자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자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ことをご自分に従うと言っている人に教えてくださいます。

그 다음 예수님과 만난 사람에게는 장사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その次にイエス様と出会った人には、葬ることの問題がありました。
또 그 다음 만난 사람에게는 가족과의 작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また、その次に出会った人には、家族とのいとまごいの問題がありました。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すべてのことをお許しになりませんでした。
이 말씀만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엄격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この言葉だけ読めば、イエス様の言葉があまりにも厳し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します。
그러나 이 말씀이 순례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두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この言葉が巡礼の道がどんな道なのかを教えてくださ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考えると、ある程度は、理解ができると思います。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イエス様はこの言葉を通して、私たちに教えてくださることがあります。
그것은 순례의 목적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それは巡礼の目的を先に考えることです。
우리의 순례의 길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私たちの巡礼の道には、多くのことが起こります。
그 일들 중에는 죽음도 있고, 이별도 있습니다.
そのことの中には、死もあり、別れもあります。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우리의 신앙을 충분히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そして、そのようなことが、私たちの信仰を時には揺り動かすこともあると思います。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순례의 목적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신앙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このような状況で、私たちが巡礼の目的を失ったら、私たちは、信仰も失って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무나도 엄격하게 말씀하십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あまりにも厳しく言われます。
62절의 말씀입니다.
62節の御言葉です。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鋤に手をかけてから後ろを顧みる者は、神の国にふさわしくない。」
이 말씀의 의미는 목적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この言葉の意味は、目的地を考え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私たちが行くべき道を考え、私たちの信仰を失わないなさいという言葉です。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만을 보고 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顧みず、神様の国だけに向かって行ったら、私たちは、私たちの巡礼を成功に終わらせ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변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この世界は、いつも変化して、多くのことが起こっています。
이러한 세상에서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このような世の中で、巡礼の道に行く私たちにも、多くのことが起こります。
하나님께서는 오늘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를 순례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神様は、今日の福音書を通して、私たちを巡礼の道へ導いてくださいます。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때로는 엄격한 말씀으로 때로는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私たちがつまずかないように、時には、厳しい言葉で、時には、恵みの言葉で私たちを導いてくださいます。
우리에게는 순례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私たちには、巡礼の目的地があります。
이것을 잊지 않고 순례의 길을 가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성령의 이끄심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このことを忘れずに、巡礼の道に行く皆さんに、神様のみ守りと聖霊の導きがあ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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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都大田区池上6-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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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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