だれが私たちの隣人ですか(ルカ10:25-37)-2019. 7. 21. 聖霊降臨後6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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だれが私たちの隣人ですか(ルカ10:25-37)-2019. 7. 21. 聖霊降臨後6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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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7-22 17:27照会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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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주 성만찬 후 이웃을 위해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私たちは毎週聖餐式の後に、隣人のための祈る時間を持っています。
가난한 자, 빈곤한 자,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貧しい者、乏しい人、私たちの祈りが必要な人々のために祈っています。
이 기도는 매우 중요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この祈りは非常に大事な祈りだと思います。
우리가 도울 수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が助けることができない人に、神様の恵みがありますように願っている祈りだからです。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神様は、私たちの祈りを聞き届けて、私たちの隣人にご自分の恵みを与えてくださるでしょう。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ところが皆さん、私たちが祈っている隣人が誰なのかを考えてみたことあるでしょうか。
아마도 우리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이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おそらく、私たちの頭の中で考えている隣人は、私たちが知っている人々だと思います。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든, 방송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든,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個人的に知っている人であっても、放送メディアを通して知っている人であっても、私たちは、私たちが知っている隣人のために祈っています。
즉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すなわち、私たちの隣人とは、私たちが認識している人々だということです。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은 그런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ところが、イエス様がおっしゃった隣人は、そのような人々だけ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유대인들이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는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ユダヤ人が認識していない人々、自分の隣人だと思っていない人々も、イエス様は隣人だと言われました。
구약 성서 레위기 19장에서는 이웃을 이스라엘 사람 동포와 이스라엘 땅에 사는 거류민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旧約聖書レビ記19章では、隣人を、イスラエル民の人々とイスラエルのもとに寄留する人々だと言っています。
그래서 구약 성서 시대의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말하는 이웃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だから旧約聖書の時代のユダヤ人たちは、律法で言っている隣人を、自分たちの周りの人だと思っていました。
그러나 시간이 흘러 신약 성서의 시대, 즉 예수님의 시대가 되자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웃이라는 것을 자신의 동포들로 한정시켰습니다.
しかし、時間が経つにつれ、新約聖書の時代、つまり、イエス様の時代になると、当時のユダヤ人たちは、隣人というものを自分たちの民たちに限るようになりました。
왜냐하면 여러 외부적인 환경들, 침략과 포로 생활에 따른 혈통의 문제, 함께 거주하는 이방인들 등으로 인해 이웃이라는 개념이 바뀐 것입니다.
なぜなら、いろいろな外部的な環境、侵略と捕虜生活に伴う血統の問題、一緒に住んでいる異邦人などによって、隣人という概念が変わってきたのです。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함께 거류하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このような環境の中で、ユダヤ人たちは、自分たちと一緒に住んでいる異邦人、サマリア人などを隣人だと思いませんでした。

지난 주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갈등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先週ユダヤ人とサマリア人の葛藤について申し上げました。
이 갈등은 오래 지속된 갈등이었습니다.
この葛藤は、長く持続された葛藤でした。
정치적인 문제로 이스라엘이 나눠진 후부터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政治的な問題によって、イスラエルが二つに分けられてから、葛藤はますます深まりました。
그리고 성전을 재건축하는 문제로(에스라 4장) 이 둘은 완전히 갈라서게 됩니다.
そして神殿を再建する問題で(エズラ記4章)、両方は、完全に別れることになります。
예수님의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시했습니다.
イエス様の時代に来ると、ユダヤ人とサマリア人は、互いをにらみ合っていました。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을 알자 화를 냈던 것입니다.
だから弟子たちは、イエス様がサマリア人に歓迎されないことが分かると、腹を立てたのです。
그리고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そして、「主よ、お望みなら、天から火を降らせて、彼らを焼き滅ぼしましょうか(ルカ9:54)」と言いました。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절대로 이웃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ユダヤ人にとってサマリア人は、絶対に隣人になれない相手だったでしょう。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말씀 중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예를 말씀하십니다.
ところが、今日の福音書でのイエス様は、隣人について言葉の中に、善いサマリア人のたとえを言われます。
이 말씀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この言葉が、ユダヤ人たちにとっては、どのような意味をもったのでしょうか。
예수님의 의도가 선한 사람처럼 되어라 라는 것이라 할지라도 유대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イエス様の意図が善い人になりなさいということであっても、ユダヤ人たちは、そのように受け入れなかったでしょう。
그리고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율법 교사와 유대인들이었고, 예수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율법과 관련이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そして、このイエス様の言葉を聞いている人々は、律法の専門家とユダヤ人たちであり、イエス様の話に登場している人々は、ユダヤ人たちの中でも、律法と関連が深い人々でした。
예수님은 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イエス様は、なぜこのような話をおっしゃったのでしょうか。
이러한 말씀을 하신 계기가 오늘의 복음서 25절에 쓰여져 있습니다.
このような話をおっしゃったきっかけが、今日の福音書25節に書かれています。
25절 말씀입니다.
25節です。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ある律法の專門家が立ち上がり、イエスを試そうとして言った。『先生、何をしたら、永遠の命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이 질문을 한 사람은 율법 전문가(교사)입니다.
この質問をした人は、律法の専門家です。
율법 전문가가 영생을 얻는 방법을 몰랐을까요?
律法の専門家が永遠の命を受け継ぐことを知らなかったでしょうか。
그렇지 않겠지요.
そうではないでしょう。
율법 전문가는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律法の専門家は、永遠の命を受け継ぐために、何をすべきかを知っていました。
그러나 이 율법 전문가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본문에 쓰여 있는 대로 “예수를 시험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しかし、この律法の専門家がこの質問をした理由は、本文に書かれているように、「イエスを試そうとした」からです。
그리고 이 율법 전문가는 이 질문을 일어나서 했습니다.
そしてこの律法の専門家は、この質問を立ち上がってしました。
일어나서 질문했다라는 것은 질문을 한 장소가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자리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立ち上がって質問したということは、質問をした場所が、イエス様が群衆に神様の言葉を教えておられる場だったかもし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
제 생각으로는 이 장소가 회당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の考えでは、この場所が会堂だったと思います。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율법 전문가는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会堂で、イエス様が神様の言葉を教えておられたとき、律法の専門家は、イエス様を試しました。
그리고 그 시험의 주제는 영생이었습니다.
そして、その試しの主題は、永遠の命でした。

이 질문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율법 전문가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져 있는지를 되묻습니다.
この質問を聞いたイエス様は、律法の専門家に律法には何と書いてあるかと言われます。
율법 전문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律法の専門家は、こう答えます。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27절)”
「『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しなさい、また、隣人を自分のように 愛しなさい』とあります。」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네 답이 옳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この答えを聞いたイエス様は、「正しい答えだ」と言われました。
그리고 이것을 행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そして、これを実行すると、命を得られると言われます。
그러자 율법 전문가는 자신을 정당화 하려고(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나이까(29절)”라는 질문을 합니다.
すると律法の専門家は、自分を正当化しようとして、イエス様に「では、私の隣人とはだれですか(29節)」と言います。

저는 율법 전문가가 이 질문을 한 것과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 하려고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私は律法の専門家がこの質問をしたことと、この質問を通して自分を正当化しようとした理由があると思います。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이웃에 대한 정의를 모두가 다르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その理由は、当時の隣人について定義をみんなが違って下していたからだと思います。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방인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여길 수가 없었던 환경이었습니다.
当時のユダヤ人にとっては、異邦人を自分の隣人のように思えない環境でした。
로마로부터는 지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에는 이방인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ローマからは支配を受けている状況であり、自分たちが住んでいるパレスチナには異邦人たちが多すぎました。
예를 들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시간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이교도들이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例えば、エルサレムで神様にいけにえをささげている時に、そんなに離れていないところでは、異教徒たちがゼウスにいけにえをささげていました。
이러한 상황은 이웃에 대한 율법이 주어진 레위기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このような状況は、隣人についての律法が与えられたレビ記の状況とは全く違いました。
그렇기 때문에 혈통을 중시하고, 스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까지도 자신의 이웃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だから、血統を重視し、自分たちが神様に選ばれたと思っているユダヤ人たちは、異邦人たちまでも、自分の隣人とは思わな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
그래서 율법 전문가는 자신의 대답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인식시키고 자신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이웃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예수님께 돌립니다.
それで、律法の専門家は、自分の答えが律法に書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人々にもう一度認識させ、自分を正当化するために、隣人とはだれですかという問題をイエス様にします。

이 질문을 들은 예수님은 한 가지의 예화를 말씀하십니다.
この質問を聞いたイエス様は一つのたとえを言われます。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それが私たちがよく知っている善いサマリア人の話です。
이 예화는 어떤 사람(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노상강도를 당한 이야기입니다.
このたとえは、ある人(ユダヤ人かもしれません)がエルサレムからエリコへ下って行く途中、追いはぎに襲われた話です。
실제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노상강도들이 자주 나타났다고 합니다.
実際にエリコからエルサレムへの道には、追いはぎが頻繁に現れたそうです。
노상강도는 그 사람을 습격하고 모든 것을 빼앗았고, 그 사람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追いはぎは、その人を襲って、すべてのものを奪い、襲われた人は半殺し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그 때 어떤 제사장이 때마침 그 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そのとき、ある祭司がたまたまその道を下って来ました。
그러나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습니다.
しかし、その人を見ると、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きました。
또 이와 같이 레위인도 그 장소를 지나갔으나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同じように、レビ人も、その場所にやって来ましたが、その人を見ると、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きました。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 사람을 보고 피해간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祭司とレビ人がその人を見ても、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ったにはいろいろな理由があるでしょう。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하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律法によると、遺体を触ることは汚れになることだと書かれています。
그래서 거의 죽게 된 자를 죽은 자로 생각하고 피하여 갔을 것입니다.
だから、半殺しになっていた人を死んだ人だと思って、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ったかもしれません。
물론 강도와 마주칠까봐 두려운 마음도 어느 정도는 있었겠지요.
もちろん追いはぎに襲われる可能性があるという心配もあったと思います。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しかし、ここで大事なことは、祭司とレビ人が何の処置もし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율법을 핑계 삼아, 두려움을 핑계 삼아 강도 당한 이웃을 돕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律法のことを言い訳にして、心配を言い訳にして、追いはぎに襲われた隣人を助け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어쩌면 율법(시체와 닿으면 부정하다)을 이용해서 율법(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もしかして、律法(遺体に触れると、汚れになる)を利用して、律法(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すること)を守ら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

그런데 여행을 하고 있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당한 사람을 발견하고 가까이 가서 도와주었습니다.
ところが、旅をしていたあるサマリア人は、追いはぎに襲われた人を見て、近寄って助けました。
응급처치를 하고 자신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간호해 주었습니다.
応急処置をして、自分のろばに乗せて宿屋に連れて行って介抱しました。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비용이 더 들면 돌아와 갚을 테니 돌보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そして、宿屋の主人にデナリオン銀貨二枚を取り出して、費用がもっとかかったら、帰りがけに払うと言って介抱を頼みます。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들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皆さん、サマリア人も律法を守っている人です。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유대인들과 갈라져 있을 뿐입니다.
政治的、社会的な問題によって、ユダヤ人と分かれているだけです。
예부터 율법을 지켜왔기 때문에, 율법과 상관 없는 이방인과는 다른 입장입니다.
昔から律法を守ってきたので、律法とは関係のない異邦人とは違う立場で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당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サマリア人は、追いはぎに襲われた人を助けました。
그 이유가 33절에 쓰여져 있습니다.
その理由が33節に書かれています。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その人を見て憐れに思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낫고, 그 마음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憐れに思うことが律法を守ることよりましで、その心が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することです。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자신을 정당화 하려고 했던 율법 교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たとえを終えてから、自分を正当化しようとしていた律法の専門家にこう言われます。
37절의 말씀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37節の御言葉です。「行って、あなたも同じようにしなさ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이웃은 우리가 성만찬 후 기도하고 있는 가난한 자, 빈곤한 자들입니다.
愛する皆さん。私たちの隣人は、私たちが聖餐の後に祈っている人々です。
이 뿐만 아니라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우리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 우리와 갈등이 있는 자들도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これだけでなく、私たちと考え方が違う人、私たちと宗教が違う人、私たちとの間に葛藤がある人も、私たちの隣人になることが可能です。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みんなが隣人だと言われました。
그리고 모든 이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습니다.
そして、すべての隣人のためにイエス様は十字架につけられ、復活なさいました。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隣人を憐れに思っ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우리에게도 그러한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私たちにも、このような心がありますように願います。
모든 이의 이웃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すべての人の隣人になる私と皆さんに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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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都大田区池上6-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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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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