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仰が答えてくれる(ルカ17:1~10)-2019.10.6. 聖霊降臨後17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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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が答えてくれる(ルカ17:1~10)-2019.10.6. 聖霊降臨後17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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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10-10 21:12照会1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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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 중에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私が持っている経験の中で、日本人から見ると、特別だと思われることが一つあります。
그런데 이 경험은 한국에서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ところが、この経験は、韓国では全く特別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それが何かとご存知ですか。
바로 군대입니다.
軍隊です。
한국의 군대는 징병제입니다.
韓国の軍隊は徴兵制です。
그래서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입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それで、韓国の男性なら、誰でも入隊することが当然の義務です。
일본과는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日本とは違う環境を持っているのです。

보통 20살이 되면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됩니다.
男性は、普通20歳になったら、軍に入隊することになります。
그리고 입대를 하게 되면 누구나 동등한 사람으로서 군사 훈련을 받게 됩니다.
そして入隊をすると、誰でも同等の者として軍事訓練を受けることになります。
부자와 가난한 자, 학벌이 좋은 자와 좋지 않은 자, 힘이 센 자와 약한 자등…
お金持ちと貧しい人、学歴が良い人とそうではない人、力が強い人と弱い人など...
이러한 구분은 군대에서는 사라집니다.
軍隊では、このような区別は、なくなります。
명령을 하는 자와 명령을 받는 자만이 존재합니다.
ただ、命令をする人と命令を受ける人だけが存在します。
이성적인 판단이나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理性的な判断や相手のきげんを伺うことなどは存在しません。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上司の命令に従うこと。これが最も大事なことです。
무리한 명령이라고 해서 불복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無理な命令であっても、服従するしかありません。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해서 따지고 드는 일도 없습니다.
理に合わないことであっても、上官に詰め寄ることはできません。
제 경우에는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규칙에 어긋나는 일도 했었습니다.
私の場合には、上司の命令に従って規則に反することもやりました。

제가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오늘의 복음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私がこのような経験を持っているためかどうかは分かりませんが、私は、今日の福音書をある程度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오늘의 복음서 말씀의 대상은 제자들입니다.
今日の福音書の言葉の対象は、弟子たちです。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言葉を持って弟子たちに、弟子の道が何なのかを教えてくださいます。
그래서 오늘의 복음서를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今日の福音書を通常のように理解して受け入れるのは難しいと思います。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도 제자입니다.
しかし、一方からみると、私たちもやはり弟子です。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지만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だから、理解しがたい言葉であっても、受け入れようとする姿勢が私たちに必要なも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겠지요.
イエス様もこの御言葉を通して私たちに語られたいことがあったのでしょう。

오늘 본문은 실족과 용서, 신앙과 봉사에 대해서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の本文は、つまずきと赦し、信仰と奉仕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他人をつまずかせないようにと言われました。
1~2절의 말씀입니다.
1〜2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つまずきは避けられない。だが、それをもたらす者は不幸である。そのような者は、これらの小さい者の一人をつまずかせるよりも、首にひき臼を懸けられて、海に投げ込まれてしまう方がましである。』」
우리 인간의 생활 속에서 실족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私たち人間の生活の中で、つまずくことは避けることができないものだと思います。
특별히 말의 실수나 오해 등으로 인해 받는 실족은 참 많습니다.
特に言葉の間違いや誤解などによって受けるようになるつまずきは、かなり多いですね。
이 뿐 아니라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나 체면을 위해 타인을 실족을 시키기도 하고, 타인에게 실족을 당하기도 합니다.
これだけでなく、人は自分の利益や名誉のために、他人をつまずかせることがあり、他人につまずかせられることもあります。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손해를 입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생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そして、そのような過程で損害と傷を受けることもありますが、逆に、人生というものを学ぶこともあります。
예수님도 실족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イエス様もつまずきは避けられないものだと言われました。
그러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도 하십니다.
ですが、つまずきをもたらす者は不幸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本当に、受け入れにくい言葉です。
실족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つまずきは避けられないものですが、それをもたらす者は不幸であるという言葉を、私たちはどう理解するべきでしょうか。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실족이라는 것은 그리스어로 “스칸달론”이라고 합니다.
イエス様が言われたつまずきとは、ギリシャ語で「スカンダロン」と言います。
“스칸달론”의 원 뜻은 덫이나 함정을 의미합니다.
「スカンダロン」の元の意味は、罠や落とし穴を意味します。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실족이라는 것은 말의 실수로 인한 실족이라기보다는, 타인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함정과 같은 것입니다.
つまり、イエス様が言われたつまずきとは、言葉のミスによるつまずきよりは、他人を欺くために作られた落とし穴のようなものです。
이러한 함정을 만든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このような落とし穴を作った人は不幸だとイエス様は言われます。
그리고 속이는 대상이 작은 자라면, 사회적인 약자나 빈곤한 자나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면 속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는 없을 것입니다.
そして欺いている対象が小さい者であれば、彼らが社会的な弱者や貧困の人、幼い子供のような人であれば、欺く人に神様の慈しみはないでしょう。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은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人は、首にひき臼を懸けられて、海に投げ込まれてしまう方がましだと言われます。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の弟子たちに必要なものは正直だと思います。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 본능 앞에서도 제자들은 정직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自分の利益を求めることは、人間の本能ですが、その本能の中でも、弟子たちは、正直になるために尽く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특히 함정을 파서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特に落とし穴をほって、小さい者に被害を与えることは、してはいけないことでしょう。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者は、不幸であると言われます。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조심해야 하고, 타인을 속이고 사회적 약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을 보고 묵과해서도 안 됩니다.
だから、私たち自らも気を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し、他人をだまして、社会的な弱者を落とし穴に陥れることを見て、容認してもなりません。
하나님께서는 실족시키는 것에 대해 묵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神様もつまずかせることについて容認をなさらないからです。

예수께서는 실족에 관련된 말씀에 이어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イエス様はつまずきに関する言葉に続いて、赦しの言葉をおっしゃいます。
여기에서의 용서는 실족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말합니다.
ここでの赦しはつまずきに関連することを含め、すべての罪についての赦しを指します。
예수께서 용서를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イエス様が赦しを言われた理由は何でしょうか。
실족시키는 것은 목에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을 정도로 무거운 죄이지만, 용서는 그런 죄 조차 뛰어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つまずかせることは、首にひき臼を懸けられて、海に投げ込まれてしまう方がましであるほどの重い罪ですが、赦しというものは、そのような罪さえも超えるものだということを、言われ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예수께서는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4節でこう言われます。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一日に七回あなたに対して罪を犯しても、七回、『悔い改めます』と言ってあなたのところに来るなら、赦してやりなさい。」
한편으로 이 말씀을 보면, 용서를 자주 구하고 용서를 자주 해 주기 때문에 죄와 용서가 가벼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一面からこの言葉を見ると、赦しを頻繁に求めれば、よく応じて赦してくれるから、罪とその赦しが軽く見えるかもしれません。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관용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의 위대함을 나타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寛容さを通して、神様の赦しの偉大さを示しておられると思います。

우리는 보통 타인에 대해 용서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지는 않습니다.
私たちは、普通、他人に対して何度も繰り返して赦してはいません。
누군가가 나에게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화를 내기도 하고, 용서하지 않기도 합니다.
誰かが自分に同じ過ちを犯したら、私たちは怒ったり、赦さなかったりします。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짓는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しかし、神様は、私たちが犯すすべての罪を赦してくださいます。
실족시키는 죄, 반복해서 짓는 죄등 우리의 회개가 있다면 모든 죄를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つまずかせる罪、繰り返して犯している罪など、私たちの悔い改めがあれば、神様は私たちの罪を赦してくださいます。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신앙 생활을 합니다.
そして、私たちは、このような神様の赦しを信じて信仰生活をしています。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たちが天国に行くことを疑っていないことも、このような神様の赦しがあるからだと思います。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용서받는 우리들이 이러한 용서를 다른 이에게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だから、イエス様は赦された私たちが、このように他の人を赦すことを望んでおられます。
용서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타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赦された恵みに感謝して、他人を赦すのです。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이게도 용서를 받았음에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しかし、私たちはあまりにも利己的な者なので、赦されましたが、赦しません。
용서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赦さないというよりは赦すことができません。
반복되는 죄를 용서하기에는 우리의 용서의 그릇이 너무나 작은 것일까요?
繰り返される罪を赦すには、私たちの赦しの心が小さいからでしょうか。
우리는 용서 앞에서 많은 변명을 하며 우리에게 죄를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私たちは赦しの前で、多くの言い訳をしながら、私たちに罪を犯した者を赦していません。

용서의 문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赦しの問題は、決して簡単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우리가 많은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많은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私たちがたくさんの赦しを受けたとしても、たくさんの赦しを与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
그래서 5절에서는 사도들이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だから5節では、使徒たちがイエス様にこう言います。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わたしどもの信仰を増してください」
일반 제자들이 아닌 사도들 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一般の弟子たちではない使徒たちでさえも、イエス様のこの言葉を受け入れることが難しいと思っているようです。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신앙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するとイエス様は、赦しの信仰について言われます。
신앙 안에서 용서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信仰の中で赦すということをどのようにすべきかを言われるのです。
7~10절의 말씀입니다.
7〜10節の御言葉です。
이 말씀은 주인에게 봉사하는 종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この言葉は、主人に奉仕する僕の姿を描いています。
일로 인해 지친 종에게 수고했다고 하는 주인은 없을 것입니다.
仕事によって疲れた僕に「お疲れ様」と言っている主人はいないでしょう。
종에게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피곤하더라도 주인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수종 들어야 합니다.
僕が働くのは当然のことであり、疲れたとしても主人の食事が終わるまで給仕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이러한 일을 다 했다고 해서 종에게 감사하는 주인은 없을 것입니다.
このような仕事を全部したとして、僕に感謝する主人はいません。
주인은 주인이고 종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主人は主人であり、僕は、僕であるからです。

신앙 안에서 용서라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信仰の中で赦すというものも、この文脈から理解してみる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
보통 용서를 베푸는 사람은 종의 입장이 아닌 주인의 입장이 됩니다.
普通、赦す人は、僕の立場ではなく、主人の立場になります。
그리고 주인의 입장이 되면 반복된 죄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そして、主人の立場になると、繰り返された罪については、赦さないでしょう。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더 심한 체벌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再び同じ過ちをしないように、よりひどい体罰を与えることもあります。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용서를 명령 받은 종의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ところが、もし私たちが、赦しを命じられた僕の立場になったらどうなるでしょうか。
주인은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主人は、赦すことを望んでおられます。
그래서 우리에게 용서하기를 명령했습니다.
だから、私たちに赦しを命じました。
그렇다면 종 된 우리는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では、僕である私たちは、赦すべきでしょう。
그것이 주인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それが主人の命令だからです。
우리의 감정이나 이성적인 생각보다 주인의 명령이 앞서는 것입니다.
私たちの感情や理性的な考えよりも主人の命令が先立つのです。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 특히 사도들에게 이러한 용서를 요구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ご自分の弟子たち、特に使徒たちに、このような赦しを求められました。
주인으로서의 용서가 아닌 종으로서의 용서를 요구하셨습니다.
主人としての赦しではなく、僕としての赦しを求められたのです。
물론 사도들이 이러한 용서를 바로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もちろん、使徒たちみんながこのような赦しをすぐ受け入れたわけではないでしょう。
어쩌면 그들도 이러한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多分彼らも、このような赦しを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사도들과 일부 제자들은 이러한 용서를 행했습니다.
しかし、時間が経ち、使徒たちと一部の弟子たちは、このような赦しを行いました。
자신들을 핍박하는 자들 앞에서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自分たちを迫害する者の前で、彼らを赦しました。
저는 제자들이 이러한 용서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자들의 아량이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私は、弟子たちがこのような赦しを行うことができたのは、弟子たちの度量が広くなったからだとは思いません。
신앙이 제자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信仰が弟子たちを変化させたのです。
신앙이 제자들 대신 용서를 베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信仰が弟子たちの代わりに赦したのだと思います。

우리는 오늘의 복음서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私たちは、今日の福音書を頭では理解しても、心では受け入れられないかもしれません。
평생 이러한 용서를 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一生このような赦しを行うことができないかもしれません。
그러나 우리가 제자의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면 언젠가 이러한 용서를 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しかし私たちが、弟子の道を続けて歩くなら、いつかはこのような赦しを行うことができるかもしれません。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용서를 요구하신다면 언젠가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대신해 대답해 줄 것입니다.
イエス様が私たちにこのような赦しをお求めになるなら、いつかは私たちの信仰が私たちに代わりに答えてくれるでしょう。
하나님의 용서를 따라 용서하겠다고.
神様の赦しに従って許しますと。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わたしどもは、取るに足りない僕です。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しただけですと。
명령에 따른 것 뿐이라고.
命令にしたがっただけですと。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실족시키지 않기를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신앙이 우리를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私たちの隣人をつまずかせないように、そして、イエス様に従う信仰が私たちを導いてくれる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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