気を落とさずに祈りましょう(ルカ18:1~8)-2019.10.20.聖霊降臨後19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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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を落とさずに祈りましょう(ルカ18:1~8)-2019.10.20.聖霊降臨後19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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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10-31 20:38照会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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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서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낙심치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今日の福音書の本文が言っていることは、気を落とさずに祈ることです。
제가 이 본문의 첫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은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私がこの本文の始めて読んだときに頭の中に浮び上がったのは、祈ったらすべてが解決されるのかということでした。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祈っても解決されないことは、たくさんあります。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祈っても解決されないので、気を落とすことはよくあります。
낙심치 말고 기도하는 것.
気を落とさずに祈ること。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지만, 이 일을 행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このことがイエス様が私たちに教えてくださった御言葉ですが、このことを行うのは、本当に難しいです。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요?
私たちの信仰が足りないからでしょうか。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말도 안 되는 것일까요?
それとも、イエス様の御言葉がとんでもないことだからでしょうか。
이 모순과 같은 말씀으로 인해 우리는 또 한 번 낙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この矛盾したような言葉によって、私たちはもう一度、気を落とすこと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
우리의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の信仰不足のために、イエス様の御言葉を疑うこともあるからです。

이러한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저는 몇 번이고 다시 오늘의 말씀을 읽어 보았습니다.
このような複雑な考えを持って、私は何度も繰り返して、今日の福音書を読んでみました。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なぜ、イエス様がこのような言葉をおっしゃったかを考えてみました。
그리고 얻게 된 결론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해결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そして得られた結論は、イエス様のこの教えは、私たちが望んでいることについての解決だけを言っている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우리가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받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私たちは気を落とさずに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問題の解決をはかるためだけではありません。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응답 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私たちが望んでいることに答えていただくためでもありません。
우리가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が気を落とさずに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私たちに信仰があるからです。
기도를 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祈りをす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神様を信じているということを表わすことなのです。
문제의 해결을 바라보고 기도한다면, 해결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우리의 신앙도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問題の解決を望んで祈ったら、解決がうまくいかないときには、私たちの信仰が揺らぐこともあります。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신앙이 있기 때문에 기도한다면, 단순히 문제 해결에 대한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しかし、逆に、私たちが信仰があるので祈るなら… 単に問題を解決するという次元ではなく、神様がなさることを期待しながら祈るなら…
私たちは気を落とさずに祈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오늘의 복음서 본문 2절부터는 과부와 재판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今日の福音書の本文2節からは、やもめと裁判官の話が出てきます。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この話は、イエス様が弟子たちにたとえとして語られたことです。
이 이야기에서의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このたとえ話の中の裁判官は、人のことを無視して、神を畏れない人です。
마치 이 세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まさにこの世のことだと思います。
힘 없는 자들을 사람처럼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잔혹한 이 세상이 바로 이 재판장과도 같습니다.
力のない者を人とも思わないで、自分の必要によって他の人を犠牲にする残酷なこの世界が、この裁判官と同じです。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도 않습니다.
神様の裁きを恐れないので、神様の言葉も守りません。
그 반면 과부는 약자입니다.
その反面、やもめは弱者です。
성서에서의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는 약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聖書での寄留者と孤児とやもめは、弱者たちを代表する人です。
오늘의 복음서에서도 과부는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장에게 부탁합니다.
今日の福音書でも、やもめは、自分を守ってくださいと裁判官に願います。
자신의 안전 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재판관이 얼마 동안 상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의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自分の安全さえも守らない人だから、裁判官がしばらくの間、取り合おうともしなかったにも関わらず、彼女は裁判官の裁きだけを待っています。
 
그러나 이 재판관은 과부의 일을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しかし、この裁判官は、やもめのことを思ってくれなかったのです。
자신에게 이 과부가 특별한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自分にこのやもめが特別な利益を与えてくれないからです。
하지만 마음을 바꾸어 먹고 재판을 하기로 합니다.
でも、すぐに心を変えて、裁判をすることにします。
이유는 간단합니다.
理由は簡単です。
과부가 번거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やもめがうるさいからです。
5절의 말씀입니다.
5節の御言葉です。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あのやもめは、うるさくてかなわないから、彼女のために裁判をしてやろう。さもないと、ひっきりなしにやって来て、わたしをさんざんな目に遭わすにちがいない」。
재판관이 과부의 부탁을 들어준 이유는 과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裁判官がやもめの願いを聞いてくれた理由は、やもめのためではありません。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입니다.
自分のことを気づかうためでした。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를 기도와 대조시키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たとえをおっしゃって、これを祈りと比べさせます。
이것은 이렇게 끈질기게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これは、このように熱心に祈ると、その祈りが成し遂げられる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
재판관과 과부를, 하나님과 택한 백성에 대조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裁判官とやもめを、神様と選ばれた人たちに比べて、神様の愛と慰めを浮き彫りにすることです。
재판관은 자신을 위해서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裁判官は自分のために、やもめの願いを聞いてくれましたが、神様はそのような方ではないというのです。
7절의 “하물며”라는 단어가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7節の「まして」という単語がそれをよく表しています。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まして神は、昼も夜も叫び求める選ばれた人たちのために裁きを行わずに、彼らをいつまでもほうっておかれることがあろうか」。

과부의 케이스와 같이 소망 없는 경우에도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의 상황은 더 나을 것입니다.
やもめのケースのように、希望無しの場合にも、成果を得ることができるのならば、まして、私たちが神様に祈るときの状況は、より良いでしょう。
낙심치 말고 기도하라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気を落とさずに絶えず祈りなさいという理由は、神様が私たち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るからです。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알맞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私たち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って、最適なものを私たちに与えてくださいます。
그래서 기도는 기도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だから、祈りは祈りそのままに意味があります。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듣는다는 것, 그리고 기도를 통해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도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私たちの祈りを神様が聞いてくださること、そしてこの祈りを通して、私たちのことを神様に委ねるということだけでも、祈りは意味があるものです。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달라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だから、祈りを、私たちの意のままに成し遂げてくださいという道具として使ってはいけないのです。
기도는 주기도문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祈りは、主の祈りのように、神様の御心がこの地でも行われることを望むのです。
즉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요구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 이루시는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すなわち、私たちの祈りが私たちの要求通り行われることを願うのではなく、私たち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る神様が、御心のままにこの世に行われることを祈るのです。
그래서 기도의 권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응답의 권리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それで、祈りする権利は、私たちが持っていますが、それに対する応答の権利は、神様が持っておられます。
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節で、イエスはこう言われます。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재판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行っておくが、神は速やかに裁いてくださる。しかし、人の子が来るとき、果たして地上に信仰を見いだすだろうか」。

 “하나님이 속히 재판해 주실 것이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재판관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神は速やかに裁いてくださる」という言葉は、神様は裁判官と違うから速やかに私たち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るというのです。
그러나 그 해결 방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닙니다.
しかし、その解決方案は、「私たちの意のまま」ではありません。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이루실 것입니다.
神の御心によって、私たちの祈りを成し遂げてくださるのです。
우리가 기도 중에 낙심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응답과 우리의 뜻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が祈りの中で気を落とすことになる理由は、神様の応答と、私たちの願いが同じではないからですね。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재판관처럼 우리의 기도를 외면했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私たちは、神様が裁判官のように、私たちの祈りを取り合わなかったと思います。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しかし、事実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
단지 우리의 요구와 하나님의 응답이 다른 것 뿐입니다.
ただ、私たちの要求と神様の応答が違うということだけです。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낙심의 이유는 우리의 욕심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これを逆に考えてみれば、気を落とす理由は、私たちの欲心の姿である可能性もあるのです。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응답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 중에 낙심하게 됩니다.
私の意のままにならなかったので、私が願う応答ではないので、私たちは、祈りの中で気を落とすようになります。
그래서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だから、イエス様は、「人の子が来るとき、果たして地上に信仰を見いだすだろうか」と言われました。
이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응답을 얻지 못해도 낙심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この信仰は、私たちが願う答えを得なくても、気を落とさない信仰です。
낙심치 않고 끊임없이 기도를 멈추지 않는 신앙입니다.
気を落とさず絶えず祈りを止めない信仰です。
우리의 뜻대로 응답이 오지 않아도 낙심하지 않는 신앙을 예수께서는 보고 싶어 하십니다.
私たちの意のままに応答が来なくても、気を落とさない信仰をイエス様はご覧になりたいと思います。

사랑하는 여러분.
愛する皆さん。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은 제자들이, 그리고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해야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イエス様がこのたとえをおっしゃった目的は、弟子たちが、そして私たちが気を落とさずに絶えず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教えるためです。
우리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시대에서도 많은 것들이 제자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私たちだけでなく、弟子たちの時代でも、多くのことが、弟子たちの意のままに成し遂げられなかったのでしょう。
그러나 제자들은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했고, 하나님 뜻대로의 응답에 감사했습니다.
しかし、弟子たちは気を落とさずに祈り、神様のみこころの応答に感謝しました。
예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많은 것을 기도하셨으나 기도의 마지막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イエス様もゲッセマネで、多くのことを祈られましたが、祈りの最後は、「しかし、わたしの願いどおりではなく、御心のままに」でした。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 이루었다”, 자신의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だから、十字架につけられたとき「成し遂げられた」と…
ご自分の意のままではなく、父のみこころ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た」と言われ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私たちの祈りが自分の願いのままに成し遂げられないとしても、気を落とさないでください。
기도를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祈るということが大事なことであり、このことが私たちの信仰であるからです。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이루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神様はみこころによって、私たちの祈りを成し遂げておられます。
우리는 신앙 안에서 낙심치 말고 기도합시다.
私たちは信仰の中で、気を落とさずに祈りましょう。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祈ることによって神様を頼りましょう。
이 기도와 의지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この祈りと頼りは、私たちをこの世でキリストの信徒として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
그리고 이러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そして、このような祈りを通して神様の御心がこの世で行われ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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