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持っている者はさらに与えられる(ルカ19:11~27)ー2019.11.10.聖霊降臨後第22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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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11-13 16:43照会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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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오오타쿠의 목사들의 가족 모임이 있었습니다.
先週の木曜日には、大田区にある三つの教会の牧師たちの集まりが家族も伴ってありました。
타리호 교회 목사 가족, 라이트하우스처치의 목사 가족, 그리고 제 가족이 맥도날드에 모였습니다.
羽田にある垂穂(たりほ)キリスト教会の牧師家族、矢口にあるライトハウスチャーチの牧師家族、そして私の家族がマクドナルドに集まりました。
목사들과 자녀들의 나이도 비슷해서 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牧師たちと子どもの年も近かったので、通じること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
목사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는 늘 같습니다.
牧師たちが集まって分かち合う話は、いつも同じです。
관심사가 같기 때문일까요?
興味が同じだからでしょうか。
선교와 예배, 교회의 일등을 이야기 합니다.
説教と礼拝、教会の行事などのことを話します。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내년 1월에 또 만나기로 하고 제가 기도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いろいろな話をした後、来年1月にまた会うことにして、私が祈って帰りました。
내년 1월에는 각 교회의 기쁜 소식들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来年1月には、各教会から嬉しい知らせを聞けたらと思いました。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름, 즉 소명이 목사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人々は、神様のお召し、すなわち召命が牧師にのみ与えられるものだと思っているようです。
일부 교회나 교단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一部の教会や教団でも、これと同じ考えを持っています。
그러나 우리 루터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소명이 목사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칩니다.
しかし、私たちルーテル教会では、神様の召命が牧師にのみ与えられるものではないと教えています。
하나님의 소명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神様の召命は私たちみんなに与えられたものです。
하나님의 소명이 있기에 우리는 신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각 자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神様の召命があるので、私たちは信者になり、神様は私たちをそれぞれの生活の場で召されました。
그래서 우리는 소명의 차이가 있다라거나 목사만이 소명 받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だから私たちは、召命の違いがあるとか牧師だけが召されたと言うことはできません。
하고 있는 일이 다를 뿐입니다.
行っていることだけが違います。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みんなが神様から召され、その召しにふさわしい人として生きて行くべきです。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들은 신도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이 부르심에 따라 힘을 합쳐 우리의 교회를 잘 이끌어가야 합니다.
私は牧師として、皆さんは信徒として、神様から召されて、このお召しによって力を合わせて、私たちの教会を導いて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이 부르심에 대해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では、このお召しについて書かれています。
부름 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이 있다라는 것도 쓰여져 있습니다.
召された私たちに与えられた神様の仕事があるということも書かれています。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생애 전반에 걸쳐 해 나아가야 하는 일입니다.
そして、この神様の仕事は、私たちの生涯にわたって、進め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です。
한 두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一回、二回で終わ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마라톤을 하는 주자처럼 신앙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だから、私たちは、まるでマラソン走者のように、信仰のペースを維持して、私たちに与えられた神様の仕事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でイエス様の言葉を聞いている人々は、神様の国がすぐに現れるものと思っていました。
1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ルカによる福音書19章11節の言葉を読んでみましょう。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エルサレムに近づいておられ、それに、人々が神の国はすぐにも現れるものと思っていたからである。」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イエス様に従っていた人々は、神様の国がすぐに臨むと思っていました。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イエス様が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行かれたからです。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스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彼らは、イエス様がエルサレムを征服して治めると信じていました。
그래서 열정적이었고, 마음이 급했습니다.
だから情熱的であり、気持ちが焦りました。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십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神様の国はすぐに現れ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教えてくださいます。
그 가르침이 오늘의 복음서의 므나의 비유입니다.
その教えが、今日の福音書のムナのたとえです。
므나의 비유의 시작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간다라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ムナのたとえは、ある立派な家柄の人が、王の位を受けて帰るために、遠い国へ旅立つことになったということから始めます。
먼 나라로 간다라는 것은 다녀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는 것입니다.
遠い国へ旅立つというのは、往復の時間がけっこうかかるというのでしょう。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나라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イエス様に従う人々はすぐに神様の国が臨むだろうと思いましたが、神様の国がこの世に現れるまでは、けっこう時間がかかるのです。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는 종 열을 부릅니다.
長い時間がかかるため、たとえの中の人は十人の僕を呼びます。
그리고 1인당 1므나를 주며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합니다.
そして、1人当たり1ムナを与え、自分が帰ってくるまで、これで商売しなさいと言います。

“귀인이 종들을 불렀다.” 저는 이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主人が自分の僕を呼んだ。」私は、これが召命だと思います。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イエス様は、私たちを呼ばれました。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각각 1므나씩을 주었습니다.
そして、私たちを呼ばれたイエス様は、それぞれに1ムナずつくださいました。
저는 이것이 신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はこのことが信者としての人生だと思います。
이 므나를 어떻게 사용할지, 우리에게 주어진 신자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このムナをどのように使うか、私たちに与えられた信者の人生をどのように生きるかは、私たちによります。
이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これは、誰かが私にさせ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우리가 스스로 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私たち自らが行って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です。
저는 이 말씀이 교회의 일에만 매진하라, 선교에만 매진하라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私はこの言葉が教会の仕事だけに邁進せよ、宣教だけに邁進せよということではないと思います。
신자로서의 인생은 단순히 선교와 교회의 일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信者としての人生は、単に宣教と教会の仕事にとどまるのではありません。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このことを超えて、神様の人として自分の人生を生きることです。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가치 있게 여기고 신자로서의 인생을 감사하며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だから、私たちの人生を価値あるものと思い、信者としての人生を感謝して生きることも大事です。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요.
私たちは、イエス様と出会うまでには、多くの時間がかかるでしょう。
그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1므나를 잘 사용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その時まで、自分に与えられた1ムナをよく使う皆さんになりますように願います。

한 편, 왕이 될 사람을 미워하는 국민들이 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一方、王の位を受ける人を憎んでいた国民がいると聖書は述べています。
국민들은 사자를 보내어 왕위를 받는 것을 반대합니다.
国民は使者を送って、彼が王の位を受けることに反対します。
“이 사람을 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 국민들의 마음이었습니다.
「この人を主にいただきたくない」ということが国民の心でした。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 들어가 있습니다.
このイエス様の言葉には、当時の政治的な状況が入っています。
예수님이 활동할 당시 유대지역을 다스렸던 사람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イエス様が活動していた時にユダヤ地域を治めた人はヘロデ・アンティパスです。
그런데 이 헤롯 안티파스가 유대지역을 다스리기 전에 유대지역을 다스렸던 사람은 헤롯 아켈라오라는 사람으로 안티파스의 형입니다.
ところが、このヘロデ・アンティパスがユダヤ地域を治める前にユダヤ地域を治めた人がいます。
その人はヘロデ・アルケラオスという人ですが、アンティパスの兄です。
이 사람들은 헤롯대왕의 아들들로서, 헤롯대왕이 죽자 장남이었던 헤롯 아켈라오는 왕위를 받기 위해 황제가 있는 로마로 갔습니다.
彼らは、ヘロデ大王の息子たちとして、ヘロデ大王が死ぬと、長男であったヘロデ・アルケラオスは、王の位を受けるために皇帝がいるローマに行きました。
그러나 아켈라오를 반대하던 유대인들의 사절단으로 인해 왕위를 받는 것을 실패했습니다.
しかし、アルケラオスに反対していたユダヤ人たちの使節団によって、王の位を受けることに失敗しました。
그리고 다시 10년 후에 왕위에 도전했으나 이번에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사절단의 반대로 동생 안티파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そして、再び10年後に王の位に挑戦しましたが、今回は、ユダヤ人たちとサマリア人たちの使節団の反対によって、弟であるアンティパスに自分の領主の席を譲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헤롯 아켈라오는 왕위를 받는 것에 실패했지만, 자신은 왕위를 받아가지고 올 것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がこのことを言われたのは、ヘロデ・アルケラオスは王の位を受けることに失敗しましたが、ご自分は王の位を受けて帰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たのだと思います。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의 귀인도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왔습니다.
イエス様のたとえの中での人も、王の位を受けて帰りました。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므나를 준 종들을 부른 것입니다.
そして、彼が一番最初にしたのは、ムナを与えた僕たちを呼んだのです。
종들은 왕에게 와서 자신이 한 일들을 보고 합니다.
僕たちは王になった主人のもとに来て、自分がやったことを報告します。
첫 번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었다고 보고 합니다.
最初の僕は、一ムナで十ムナもうけましたと報告します。
두 번째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벌었다고 보고합니다.
二番目の僕は、一ムナで五ムナを稼ぎましたと報告します。
그리고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상급이 주어졌습니다.
そして、彼らにはものすごい報いが与えられました。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가 주어진 것입니다.
十の町、五つの町を治める権利が与えられたのです。
그런데 어떤 종은 받은 므나를 사용하지 않고 천에 싸두었다고 보고합니다.
ところが、ある僕は、受けたムナを使わないで、布に包んでしまっておきましたと報告します。
그 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その僕はこう言います。
21절의 말씀입니다.
21節の言葉です。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あなたは預けないものも取り立て、蒔かないものも刈り取られる厳しい方なので、恐ろしかったのです。」

이 종의 변명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この僕の言い訳をよく考えてみてください。
이 종이 주인을 무서워하고 있습니까?
この僕は主人を恐れていますか。
만일 주인을 무서워했다면 이런 무책임하고 주인을 비방하는 변명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もし主人の厳しさを恐れたとしたら、このように無責任で、主人のことを貶す言い訳はしなかったでしょう。
그리고 이 종은 자신의 잘못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そして、この僕は、自分の過ちを主人に帰しています。
마치 당신은 이런 사람이니 내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했다라는 태도입니다.
まるで、あなたはこのような人だから、私が恐れて何もできなかったという態度です。
차라리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결과가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むしろ自分の過ちを告げて、許しを求めたら、結果はよりよくなったでしょう。
모든 것은 주인의 잘못이다라는 태도로 일관한 종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すべてが主人の過ちだという態度だった僕に主人はこう言います。
22-24절의 말씀입니다.
22-24節の言葉です。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主人は言った。『悪い僕だ。その言葉のゆえにお前を裁こう。わたしが預けなかったものも取り立て、蒔かなかったものも刈り取る厳しい人間だと知っていたのか。ではなぜ、わたしの金を銀行に預けなかったのか。そうしておけば、帰ってきたとき、利息付きでそれを受け取れたのに。』そして、そばに立っていた人々に言った。『その一ムナをこの男から取り上げて、十ムナ持っている者に与えよ。』」

저는 주인이 자신의 므나가 아까워서 이런 심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私は主人が自分のムナが惜しくて、この裁きをしたとは思いません。
만일 므나가 아까울 정도로 주인이 인색하다면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종에게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もしムナが惜しいほど主人がけちだったら、僕に十の町、五つの町を治める権利を与えなかったでしょう。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종들을 부른 목적은 심판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主人が僕を呼んで来させ、どれだけ利益を上げたかを尋ねた目的は、裁きではなかったと思います。
자신의 부름을 충실히 따른 자들에게 상급을 주는 것이 주인의 목적이었습니다.
自分の召しに忠実に従った僕たちに報いを与えることが主人の目的だったでしょう。
그래서 므나를 많이 벌던 벌지 못하던 괜찮습니다.
だから、ムナをたくさんもうけるか、もうけなかったのかは大事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본문 13절의 말씀처럼 므나를 사용해서 장사하는 것만으로 종들은 상급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本文13節の御言葉のように、ムナを使って商売するだけでも、僕たちは報いを受け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우리의 소명도 이와 비슷합니다.
私たちの召命も同じです。
크리스찬으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クリスチャンとして召された私たちに必要なのは、信者としての人生を生きていくことです。
우리가 받은 므나를 헛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私たちがいただいたムナを無駄にしてはいけません。
므나를 헛되게 한다면 가지고 있는 므나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ムナを無駄にしたら持っているムナも主人に奪われるでしょう。
므나의 가치를 알고 우리의 생활에서 신자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많은 므나를 남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ムナの価値を知って、私たちの生活の中で信者として生きていけば、私たちはたくさんのムナを残すことができるのです。
우리 각자에게는 주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私たちそれぞれには、与えられた仕事があります。
목사로서 신도로서, 교회의 여러 봉사자로서 주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牧師として、信徒として、教会のいろいろな奉仕者として与えられた仕事があります。
이 일들에 충실히 임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지키는 자들에게는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このことに忠実に臨んで、主の体である教会を守っている者には、大きな報いがあるでしょう。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 함께 신자의 길을 걸읍시다.
神様の国に入るまで、一緒に信者の道を歩きましょう。
신자의 길을 걷는 여러분들에게 므나가 더욱더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信者の道を歩んで行く皆さんのうえに神様からのムナがさらに与えられますように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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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絡先: 03-4285-6094(教会)
東京都大田区池上6-21-18
教会の牧師:李正雨(イゾンウ)
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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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週日曜日、午前11時 主日礼拝
毎週土曜日、午前11時30分 聖書研究会
毎週土曜日、午前10時、12時 英語教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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