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じるなら、神の栄光を見られる(ヨハネによる福音書11:17 -44)-2020.3.29.四旬節第5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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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じるなら、神の栄光を見られる(ヨハネによる福音書11:17 -44)-2020.3.29.四旬節第5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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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20-04-07 23:23照会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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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信じるということは、何でしょうか。
이 믿는다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인 것 같습니다.
この信じるという言葉は、本当に難しい言葉だと思います。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私たちは、神の御言葉を信じています。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しかし、その御言葉通りに生きることはできません。
믿고 있지만, 믿음대로 살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信じていますが、信仰のとおりに生きてはいないということです。
이것은 저도, 여러분도, 다른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これは、私も、皆さんも、他の信者たちも同じでしょう。
그래서 저는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だから、私はなぜこのようになるのか、一度考えてみました。
믿지만 왜 믿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일까요?
信じていますが、なぜ信仰の通りに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しょうか。

저는 이러한 일이 인간의 한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私はこのようなことが、人間の限界にあ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ました。
그런데 이 한계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결여만은 아닙니다.
ところが、この限界ということは、神への信仰の欠如だけではありません。
아는 것에 대한 한계도 있습니다.
知っていることについての限界もあります。
우리는 수 많은 세월을 거쳐서 인류가 안 것을 배웠고, 배운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私たちは、多くの年月を経て、人類が知ったことを学び、学んだことを教えてきました。
그 아는 것이라는 것은 보통 안정적이고 안전한 것입니다.
そして、その知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普通安定的なことであり、安全なことです。
그래서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아는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더해 우리들의 세계를 넓혀 왔습니다.
それで、私たちは知っていることを大事に思い、知っていることをベースにして、新しい知識を加えて、私たちの世界を広げてきました。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은 굉장히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最近コロナウイルスによって、人々の生活が脅かされています。
수 많은 나라들이 나라의 문을 걸어 잠궜습니다.
多くの国が自分の国の門を閉ざしました。
여러 소문들이 생겼고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물품들을 사재기 하고 있습니다.
いろいろな噂が出て、人々は、たくさんの品物を買いだめしています。
솔직히 말하면 바이러스의 위력보다 공포의 위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正直に言うと、ウイルスの威力そのものよりもウイルスが広がることに対する恐怖の威力が大きいようです。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なぜこんなことが起こったのでしょうか。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コロナウイルスについての知識がない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
알지 못하는 것, 미지로 인해 더 큰 공포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知らないこと、未知であることによって、より大きな恐怖が起こったのだと思います。
앞 서 말씀 드렸지만, 우리 인간들은 미리 알고 있는 것을 안정된 것으로 여기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의 세계를 넓혀 왔습니다.
先に申し上げましたが、私たち人間は、すでに知っていることを安定したことと受け止め、それをベースにして、自分たちの世界を広げてきました。
그렇기 때문에 아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고 안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だから、知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にとって大事なものであり、安定的なことだと言えるでしょう。
반대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과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反対に、知らないものについては、抵抗感や不安を持っています。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신앙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これらのことは、私たちの信仰にも影響を与えると思います。
물론 미지의 것을 뛰어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もちろん未知のことを越えるのが信仰でしょう。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 온 것들이 미지의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대부분의 신앙도 우리가 아는 것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私たちが求めてきたことが未知のものではなかったので、私は、ほとんどの信仰も、私たちが知っていることを越えることはできないと思います。

오늘의 복음서에서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に登場している多くの人々も、この限界を表わしています。
나사로의 일을 위로하러 온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하고 지지했던 마르다와 마리아도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ラザロのことを慰めに来たユダヤ人だけでなく、イエス様を信頼して支持したマルタとマリアもこの限界を超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
그들의 신앙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彼らの信仰が足り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と思います。
그들도 예수님을 믿었고, 죽음 이후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彼らもイエス様を信じて、死後の復活を信じていました。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신의 영역인 부활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しかし、神様の子に対して、神の領域である復活については、分からな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だから彼らは、イエス様にこう言います。
21절의 말씀입니다.
21節の言葉です。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主よ、もしここにいてくださいましたら、わたしの兄弟は死ななかったでしょうに。」

마르다의 말 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여러 감정이 드러납니다.
マルタの言葉の中には、イエス様に対するいろいろな感情が表れています。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에 대한 원망,죽음 앞에서의 절망과 슬픔, 반면 예수님에게 기대하는 소망등이 드러납니다.
イエス様が遅く来られたことに対する恨み、ラザロの死を前にしての絶望と悲しみ、一方、イエス様に期待する希望などが表れています。
그러나 이 소망은 마르다가 아는 범위 내에서의 소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この希望はマルタが知っている範囲での希望だったと思います。
22절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22節でマルタは、イエス様に「あなたが神にお願いになることは何でも神はかなえてくださると、わたしは今でも承知しています」と言います。
그러나 이 말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しかし、この言葉はラザロが生き返ることについてのことではありません。
예수님께 위로를 구하는 것입니다.
イエス様に慰めを求めているのです。
하나님으로부터의 위로를 받을 수 있게 구하고 있는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神様からの慰め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求め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
왜냐하면 마리아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마지막 날의 부활(24절)과 그 날의 메시아가 될 예수님(27절)이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マリアが念頭に置いていることは、終わりの日の復活(24節)とその日にメシアになるイエス様(27節)であるからです。
그래서 마리아는 39절에서 나사로의 무덤을 여는 것을 만류한 것입니다.
だから、マリアは39節でラザロの墓を開くことを遠慮したのです。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부활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すると、イエス様は、ご自分からはじめる、復活の信仰について言われます。
마르다는 그 신앙을 믿는다고 합니다.
マルタは、その信仰を信じていると言います。
입으로도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합니다.
口でも、キリストに対する信仰を告白します。
그러나 실상 마르다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しかし、実際には、マルタは、イエス様のその言葉が自分の目の前で起こるとは信じていなかったのです。
아니,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いや、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이와 같은 반응은 그녀의 동생 마리아에게서도 나타납니다.
このような反応は、彼女の妹であるマリアにも現れます。
개인적으로는 마리아는 마르다보다 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私個人的には、マリアはマルタより深い信仰心を持っていると思います。
하지만 마리아 역시 마르다와 똑 같은 말을 합니다.
しかし、マリアもマルタと同じことを言います。
32절입니다.
32節です。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マリアはイエスのおられる所に来て、イエスを見るなり足もとにひれ伏し、「主よ、もし、ここにいてくださいましたら、わたしの兄弟は死ななかったでしょうに」と言った。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マリアもやはりイエス様の御言葉と奇跡を経験した人です。
예수님이 함께 있었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イエス様が一緒におられたら、ラザロが死ななかっただろうと思いました。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이 실제로 눈 앞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イエス様が言われた復活が実際に目の前で起こるとは考えられませんでした。
왜냐하면 마리아도 마르다처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マリアもマルタのように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です。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어 운 것입니다.
だからマリアは、イエス様の足の前にひれ伏して泣いたのです。
만일 삶과 죽음이 예수님의 손에 달려있다라는 것을 알았다면 마르다도 마리아도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もし命と死がイエス様の手にかか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たら、マルタも、マリアも絶望しているだけ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
예수님께 살려 달라고 간청했을 것입니다.
たぶんイエス様に、ラザロを生き返ってくださいと求めたかもしれません。

예수님께서는 절망에 휩싸인 사람들을 보고 마음 속에 분노를 느끼셨습니다.
イエス様は絶望に覆われた人々を見て、心に憤りを覚えました。
그리고 흥분하셨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そして、興奮され、涙を流されました。
예수님께서 왜 마음 속에 분노를 느끼시고 흥분하셨고 눈물을 흘리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イエス様がなぜ心に憤りを覚え、興奮され、涙を流されたのかは、分かりません。
많은 학자들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多くの学者たちは、死というものについての憤りからだと言います。
죽음이 사람들을 슬프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것에 분노하셨고 눈물을 흘리셨다라고 합니다.
死が人を悲しませたので、イエス様はそれに憤りを覚え、涙を流されたと言います。
일부 학자들은 사람들의 믿음이 죽음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하셨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一部の学者は、人々の信仰が死を越えなかったので、憤りを覚え、涙を流されたと言います。
저는 예수님의 분노와 눈물에 속에 이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私の考えでは、イエス様の憤りと涙の中にはこのすべてのことが入っていると思います。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빈정거리는 사람들과 이 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そして、それだけでなく、イエス様を誹謗する人や、このことでイエス様を殺そうと計画している人たちへの憤りも入っているとみます。

37절을 보면 “그 중에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37節を見れば「しかし、中には、『盲人の目を開けたこの人も、ラザロが死なないようにはできなかったのか』と言う者もいた」と書かれています。
53절에는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53節には、「この日から、彼らはイエスを殺そうとたくらんだ」と書かれています。
예수님과 친한 나사로가 죽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イエス様と親しかったラザロが死ぬと、人々は、イエス様を誹謗します。
그리고 예수님이 그를 부활시키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が彼を復活させると、祭司長たちと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イエス様を殺そうと計画します。
예수님께서 분노하시고 눈물을 흘리신 이유에는 이 모든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イエス様が心に憤りを覚え、涙を流された理由には、このすべてのことが入っています。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는 신앙, 사람들의 비방과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
愛する人の死、死を超えない信仰、人々の誹謗とイエス様を殺す計画など...
사람들은 질투와 두려움으로 인해 모두 맹인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을 분노하게 그리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人々は嫉妬と恐れによって、すべてが盲人になってしまい、これらのことはイエス様の心に憤りを覚えさせ、そして涙を流させたと思います。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은 알지 못했다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このような人々の反応は、知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にあったと思います。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人々はイエス様について知りませんでした。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자신의 지식 안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イエス様のことに反対していた人々はもちろん、イエス様に従っている人々も、自分の知識の範囲内で、イエス様に従っていました。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私たちも彼らと同じだと思います。
우리도 죽음과 부활에 대해, 신의 영역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も、死と復活について、神様の領域について知らないからです。
그래서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だから、私たちはいつも祈るべきことは、私たちが知らないことについてのことです。
예수께서는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信じるなら、神の栄光を見られると言われました。
이 믿는다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알 때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この信じ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イエス様について知る時に可能になることだと思います。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죽음과 부활에 대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イエス様について知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死と復活について悟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神様が私たちに恵みを与え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願います。

지금 밖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습니다.
今、外では桜が満開です。
겨울의 벚꽃나무에는 생명이 없어 보입니다.
冬の桜の木は、命がなさそうですね。
하지만 봄이 되면 죽어 있는 듯한 벚꽃 나무에서 꽃이 핍니다.
しかし、春になると死んでいるような桜の木に花が咲きます。
이러한 자연의 섭리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これらの自然の摂理の中で、私たちは、主の復活を経験す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
겨울내내 잠들어 있던 나무에서 꽃이 피듯이 우리의 부활도 그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冬の間、眠っていた木から花が咲くように、私たちの復活もそのように行われるからです。
자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自然の中で語られる神様の声を聞く私たちに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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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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