ゲッセマネでの祈り(マタイ26:36-46)-2020.4.5.四旬節第6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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ゲッセマネでの祈り(マタイ26:36-46)-2020.4.5.四旬節第6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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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20-04-11 22:55照会1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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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란 교회의 목사님은 인자하셨고 속이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私が育てられた教会の牧師先生は、慈愛深くて心が強い方でした。
항상 평안을 유지하셨고,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いつも安らかに人と接し、笑顔を失われませんでした。
그래서 목사님을 보면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それで、先生を見ると、まるでイエス様を見ているようでした。
그런 목사님이 단 한 번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우신 적이 있었습니다.
そのような先生が一度だけ、すべてを失ったように泣か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
목사님의 아들이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先生の息子さんが若くして生涯をとじた時でした。
목사님이 우시자, 신자들 모두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先生が泣かれると、信者みんなが泣き始めました。
저도 울었습니다.
私も泣きました。
목사님의 아들과의 좋은 관계가 있었기도 했지만, 목사님의 슬픔이 저에게도 전해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先生の息子さんとの良い関係があったこともありましたが、先生の悲しみが私にも伝わったように感じたからです。
그리고 목사님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이 우셨던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이 일은 저에게 있어서는 적잖은 충격으로 남는 일이
되었습니다.
そして、先生がすべてを失ったように泣かれたことを初めて見たので、このことは、私にとって大きな衝撃でした。
이 일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このことが起こってから、すでに20年が経ちました。
하지만 아직도 저에게는 이 기억이 남아있고, 이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아파옵니다.
しかし私には、まだこの記憶が残っており、この時のことを思い出すと、今でも胸が痛くなります。

오늘의 복음서를 읽으면서 저는 예수님의 모습과 당시의 목사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を読みながら、私の中で、イエス様の姿と当時の牧師先生の姿がオーバーラップしました。
복음서에서의 예수님도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모습입니다.
福音書でのイエス様も、すべてを失ったような姿でした。
대체적으로 예수님은 여유가 있으셨습니다.
だいたい、イエス様は余裕を持っておられました。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여유가 있으셨고, 논쟁 가운데도 여유가 있으셨습니다.
ご自分を非難する人の前でも余裕があり、議論の中でも余裕がありました。
병자나 죽은 사람 앞에서도 여유가 있으셨습니다.
病人や死んだ人の前でも余裕を持っておられました。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ところが、今日の福音書でのイエス様は、余裕を持っておられないようにみえます。
심지어는 뭔가 불안해 보입니다.
さらには何か不安そうに見えます。
본문 37절과 38절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本文37節と38節には、このように書かれています。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ペトロおよびゼベダイの子二人を伴われたが、そのとき、悲しみもだえ始められた。そして、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は死ぬばかりに悲しい。ここを離れず、わたしと共に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悲しみもだえ始められた。そして、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は死ぬばかりに悲しい…』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皆さんは、このようなイエス様の姿を想像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복음서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福音書のどこにも、このようなお姿は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
문제를 일으키거나 걱정에 빠져 있는 쪽은 언제나 제자들이었습니다.
問題を起こしたり、心配に陥っているのは、いつも弟子たちの方でした。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이끄셨고,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弟子たちを導いておられ、新しい希望とビジョン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은 제자들처럼 무력했고, 사람들처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ところが、今日の福音書でのイエス様は、弟子たちのように無力で、人間のように心配しておられました。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십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は、ご自分の弟子たちにも助けを求められます。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ここを離れず、わたしと共に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

무엇이 예수님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何がイエス様をこのようにしたのでしょうか。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死の恐れでしょうか。
일부 학자들은 신이신 예수의 죽음은 예수 자신에게 있어서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一部の学者は、神であるイエスの死は、イエス自身にとっても、大きな衝撃だっただろうと言っています。
그러나 저는 그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しかし、私の考えではそれだけではないと思います。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죽음은 마치 자는 것과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
イエス様の言葉の中での死は、まるで眠っていることと同一視されるからです。
예수님은 마가복음 5장 39절에서 죽어 있는 야이로의 딸 앞에서 우는 사람들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マルコによる福音書5章39節で、死んでいるヤイロの娘の前で泣いて人々に「子供は死んだのではない。眠っているのだ」と言われました。
그리고 달리다굼 “소녀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죽은 소녀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そして、「タリタ、クム」、「少女よ、起きなさい」と言われると、死んだ少女が起き上がって、歩きだしました。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최후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자는 것일 뿐입니다.
私たち人間にとっての死は、最後だと思われることですが、イエス様にとっては眠っていることだけです。
그래서 저는 그런 예수님이 죽음을 두려워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だから私は、このようなイエス様が死を恐れたとは思いません。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저렇게 절망하고 불안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それでは、イエス様があのように悲しまれ、不安そうに見える理由は何でしょうか。
저는 그 답을 우리가 성찬 전에 부르는 아그누스데이에서 찾았습니다.
私はその答えを、私たちが聖餐の前に唱える「アグアヌスディ」で捜しました。
아그누스데이는 요한복음 1장 29절의 말씀에 기인해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アグアヌスディ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1章29節の御言葉に基づいて作られた曲です。
“세상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일본역)”
「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小羊」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성이고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これがイエス様のアイデンティティであり、この世に来られた理由です。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전 해야 하실 일이 있습니다.
そうしたら、イエス様はご自分の死の前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一つあります。
그것은 세상 죄를 지는 것입니다.
それは世の罪を背負うことです。
유대의 제사의 시작은 제물에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ユダヤ教のいけにえの開始は、いけにえのものに自分の罪を転嫁することから始まります。
그러면 그 제물은 모든 죄를 전가 당한채로 죽임을 당하고 죄를 전가한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얻게 됩니다.
そうすると、そのいけにえは、罪を転嫁されたまま殺され、罪を転嫁した人は、神様のお許しを受けることになります。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죄를 전가 당해야 했습니다.
このように、イエス様は、この世の罪を取り除くため、罪を転嫁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그리고 예수님은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겠지요.
そしてイエス様は、その罪によって、神様の裁きを受け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예수님께서 그토록 슬퍼하시고 번민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がそのように悲しみもだえた理由は、神様の裁きにあったと思います。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겠지요.
神様の子として、神様の裁きを受けることほど、辛いことはないでしょう。
그래서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切に祈ります。
39절의 말씀입니다.
39節の言葉です。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少し進んで行って、うつ伏せになり、祈って言われた。『父よ、できることなら、この杯をわたしから過ぎ去らせてください。しかし、わたしの願いどおりではなく、御心のままに。』」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당면한 상황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イエス様は、ご自分が直面した状況を過ぎ去らせてくださいと祈られます。
이 시점에서 만은 예수님은 강인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この時点だけでのイエス様は、強くなかったと思います。
영웅도 아니었고, 제자들을 이끌던 리더쉽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英雄でもなかったし、弟子たちを導いたリーダーシップのある人でもありませんでした。
그토록 하나님의 심판은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それほど、神様の裁きは、絶望的なものでした。
하지만 예수님께서 끝까지 놓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しかし、このような状況でも、イエス様が最後まで握っていることがありました。
그것은 하나님의 뜻,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それは神様の御心、私たちの救いでした。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라고 기도를 마치십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御心のままに」と祈りを終えられます。

그리고 이 기도는 세 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そして、この祈りは三度も繰り返します。
44절에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44節にこう書かれています。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そこで、彼らを離れ、また向こうへ行って、三度目も同じ言葉で祈られた。」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라는 것은 이 기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三度も繰り返されたということは、この祈りがどんなに激しかったのかを表すことだと思います。
성서에서 반복은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聖書での繰り返しは、重要なことを意味します。
예를 들면 이사야서 6장 3절에서 천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합니다.
例えば、イザヤ書6章3節で、天使が神様のことを唱えたとき、「聖なる、聖なる、聖なる」と唱えます。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거룩하다라는 것을 세 번 주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これは単純に、神様は聖なるということを三度唱えたのではなく、神様の聖なることを最上級で表現したことです。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라는 것은 예수님은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셨다라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に、イエス様が三度も同じ言葉で祈られたというのは、イエス様は最善を尽くして祈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원의 과정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イエス様の祈りを通して、私たちが分かることは、救いの過程がそんなに簡単なこと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예수님이니까, 신이니까 가능했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イエス様だから、神だから可能だったと思ってはならないでしょう。
이 구원의 과정은 예수님도 피하고 싶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고, 세 번이나 기도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この救いの過程は、イエス様も避けたいほど重いことであり、三度も祈るほど大事なことでした。
우리의 구원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私たちの救いは、簡単に得ら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고,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だから、救われたことに感謝して、救いを大切に思っている皆さんになりますように願います。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イエス様は祈りを終えられて、弟子たちのところに来られてこう言われます。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6절)”
「立て、行こう。見よ、わたしを裏切る者が来た(46節)。」

이 말씀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この言葉から、皆さんは何を感じられましたか。
저는 예수님의 각오와 담대함을 느꼈습니다.
私は、イエス様の覚悟と大胆さを感じました。
예수님에게서 더 이상 슬픔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これ以上、イエス様から悲しみは見つけることができません。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셨습니다.
イエス様は祈りを通して、ご自分の心を治め、神様の御心に従っていかれました。
저는 이것이 기도가 주는 신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私はこのことが祈りが与える信仰の力だと思います。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해 주는 것입니다.
祈りは、私たちの心を治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神様の御心に従う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れることです。

우리에게서 감사가 사라질 때,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지 못할 때, 겟세마네를 생각하십시오.
私たちに感謝の気持ちが消えるとき、私たちの信仰が揺らぐとき、私たちが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分からないとき、ゲツセマネのことを想い出してください。
그 곳에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이 계십니다.
そこには、私たちのために祈られたイエス様がおられます。
요즘과 같이 혼란한 시기에 겟세마네의 기도는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最近のように混乱した時期にゲッセマネの祈りは、私たち信者にとっては、非常に大事なことだと思います。
기도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祈って、イエス様の御言葉に従って生きていく皆さんに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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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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